비욘드포스트

2024.09.21(토)
[신형범의 千글자]...도자기 박물관에 들어간 코끼리
교회에 같이 다니는 사람들과 이른바 ‘형제 모임’을 가졌습니다. 다들 근처에 살기 때문에 식사하고 차 마시고 수다 떠는 걸 목적으로 한 달에 한번 갖는 정기 모임입니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근처에 유명하다는 카페로 갔습니다. 공원처럼 꾸며 놓은 화려한 정원에다 건물은 박물관처럼 영국의 다양한 도자기들이 가득 전시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카페 드 첼시’입니다.

독일 마이센을 시작으로 영국의 첼시, 로얄 코펜하겐, 체코 보헤미아 등 지금은 세계적인 명품 도자기로 유명하지만 18세기 초까지 유럽은 백색 도자기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 때까지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한 도자기를 귀한 보물처럼 여겼고 특히 중국산 청화백자는 ‘백색금’으로 불릴 만큼 비쌌고 부의 상징으로 대접받았습니다.

중국산 도자기는 품질이 뛰어나 ‘china’는 고급 도자기를 일컫는 보통명사가 됐습니다. ‘China’로 쓰면 중국이지만 china는 도자기를 말합니다. ‘본차이나(bone china)’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고급 도자기의 수요가 증가하자 유럽 각지에서 다양한 제조방법을 시도하다가 영국에서 동물의 뼈(주로 소)를 태워 만든 골회를 고령토에 섞어 도자기의 완성도를 높인 것이 제조업자들 사이에 널리 퍼지면서 상업화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관련해서 독일 언론들이 자주 인용하는 ‘도자기 상점의 코끼리(Der Elefant im Porzellanladen)’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값비싸고 귀한 고급 문화상품인 도자기를 잔뜩 진열해 놓은 도자기 가게에 코끼리가 들어왔으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코끼리가 움직일 때마다 도자기는 부서지고 박살이 날 것입니다. 하지만 코끼리가 나쁜 의도로, 또는 사악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가지 말아야 할 곳에, 어울리지 않는 곳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있으니 본능에 따라 움직일 뿐인데 자꾸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귀한 도자기들을 박살내고 있는 게 문제이긴 한데 코끼리에게 잘못을 물을 수는 없다는 게 고민입니다. 코끼리는 그게 문제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성찰할 능력도 없습니다. 결국 코끼리가 문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하고 또 그런 가능성을 가리고 왜곡한 언론, 코끼리를 밀어 넣은 사람, 들어가는 걸 막지 못한 사람들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이 얘기는 내 말이 아니라 최근에 한 작가가 책을 냈는데 현재 정권을 비판하면서 비유로 든 말입니다. 책에는 안 나왔지만 나쁜 의도는 없다 하더라도 코끼리가 본능과 욕망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때마다 계속 부서지고 있는 의료, 민생, 경제, 교육, 외교라는 비싼 도자기들은 언제 회복될 지, 또 코끼리는 언제 박물관에서 나오게 될 지 걱정도 되고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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