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가계부채 급증세를 차단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규제에 나선 가운데, 주요 시중은행 대출금리가 가파르게 치솟아 3개월 사이에 0.5%포인트 가까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정할 때 기준이 되는 지표금리인 코픽스(COFIX | 자금조달비용지수)보다 상승 폭이 무려 3.5배가량이나 높아졌다. 정부의 강력한 요구에 따른 대출 ‘조이기’에 나선 은행들이 가산금리와 우대금리 조정을 통해 대출금리를 시장금리보다 빠르게 올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지난 9월 3일 기준 신규 코픽스(COFIX) 연동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연 2.80∼4.30%로 이는 약 3개월 전인 지난 5월 말(2.35∼3.88%)과 비교해 상단은 0.42%포인트, 하단은 0.45%포인트나 높아졌다. 신규 코픽스가 아닌 신(新) 잔액 코픽스 연동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도 같은 기간 2.284∼4.01%에서 2.673∼4.38%로 높아졌다. 상단이 0.37%포인트, 하단이 0.389%포인트 높아졌다.
지난 8월 18일부터 적용된 7월 신규 코픽스는 0.95%로, 5월 18일부터 적용된 4월 기준 신규 코픽스(0.82%)보다 0.13%포인트 높아졌다. 이 같은 은행권 대출금리 상승 폭은 3개월 새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의 지표금리인 코픽스 상승 폭보다 최대 3.5배에 달하는 셈이다. 이는 가계대출 규제를 강화하라는 금융당국의 압박을 받은 시중은행들이 가산금리를 큰 폭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코픽스는 국내 8개 은행(농협, 신한, 우리, SC제일, 하나, 기업, 국민, 한국씨티은행)이 대출에 쓰일 자금을 조달하는데 들인 비용(금리)을 나타내는 지표이자 조달한 자금의 가중평균금리로 은행이 실제 취급한 예·적금, 은행채 등 수신 상품의 금리 변동이 반영된다.
은행들의 가산금리 인상은 신용대출 금리도 크게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9월 1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은행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3.89%로 1년 전(2.92%)보다 0.97%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기준금리는 0.50%로 변화가 없었고, 올해 8월 0.75%로 0.25%포인트 올랐다. 올해 8월에도 은행 신용대출 금리 상승세가 이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1년간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는 동안 대출금리는 무려 4배나 더 오른 셈이다.
최근 신용대출 금리는 올해 9월 3일 현재 3.00∼4.05%(1등급·1년)다. 올해 5월 말(2.564∼3.62%)보다 0.43%포인트나 뛰었다. 심상찮은 가계부채 급증세를 막기 위해 금융당국이 규제에 나서자 은행은 가산금리 인상으로 대출을 줄이려고 한다. 취약계층은 이자 부담이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 돈을 빌리기도 더욱 어려워졌다. 7~8등급 저신용자의 KB국민은행 신용대출 금리는 올해 7월 평균 9.80%로 3개월 새 2.62%포인트 급등했다. 1~2등급은 3.48%로 0.23%포인트 올랐을 뿐이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8월 13일 은행 여신 담당 임원들을 소집해 통상 연(年) 소득의 1.2~2배 수준인 신용대출 한도를 연 소득의 100% 이하로 낮출 것을 요청했다. 이에 농협은행이 지난 8월 24일부터 신용대출 최고 한도를 기존 2억 원에서 1억 원 이하, 연 소득의 100%로 줄였다. 하나은행도 지난 8월 24일부터 개인 신용대출 한도를 연 소득 이내로 제한했다. 마통한도도 최대 5000만 원으로 축소했다.
우리은행도 주택담보대출 상품인 '우리아파트론'과 '우리부동산론'의 우대금리 최대한도를 축소하고, 전세대출 '우리전세론' 우대금리 항목도 일부 줄이기로 했다. 우대금리 조정은 지난 9월 1일부터 적용했다. 특히 우리은행은 지난 9월 13일 누리집에 공지글을 올려 부동산금융상품(부동산담보대출, 전세자금대출 등)과 신용대출 가운데 ‘신잔액 코픽스’를 기준금리로 하는 대출상품을 오는 9월 15일부터 11월30일까지 판매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가계대출을 더 조이겠다는 것이다.
시중은행에 이어 보험사와 카드사 등 전 금융권의 ‘도미노 대출 중단’사태가 가속되면서 대출 보릿고개가 시작됐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여기에다 설상가상 한때 과거 소득·직업·미래상환능력 등에 따라 심사를 거쳐 가능했던 억대 한도의 마이너스통장도 정부가 한도 축소로 봉쇄하자, 서민들과 취약계층의 대출 받기 고통은 더욱더 가중되고 있다. 마이너스통장은 대출 한도를 미리 정해두고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통장으로, 주로 직장인들이 미리 마통계좌를 뚫어놓고 급할 때 쓰는 식으로 활용돼 온 게 사실이다.
지난 9월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정부가 가계부채 급증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자 내 건 ‘대출한도축소’ 조정에 맞춰 시중은행들은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5000만 원 이내로 일제히 하향하고 있다. 이는 은행들이 신용대출 규제로 대출수요가 마이너스통장으로 몰릴 것으로 대비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으로 풀이된다. 은행들은 마이너스통장 연장 시점에 약정 한도를 일정 비율 이상 소진하지 않으면 자동 감액되도록 했다. 이러한 시중은행들의 제1금융권의 대출 압박은 제2금융권으로의 ‘풍선효과’를 유발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보험업계에서는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 나섰다. 금융당국이 정한 차주별 DSR 규제 한도는 시중은행 등 제1금융권은 40%, 보험·카드사 등 제2금융권은 60%다.
그뿐만 아니라 카드론(장기카드대출) 금리도 인상하는 등 대출 총량 관리가 가속되고 있다. 카드론은 시중은행보다 비교적 대출 문턱이 낮아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이자율이 최대 19.95%에 달하는 고위험 대출에 속한데도 불구하고 많이 찾는 대출상품으로 줄곧 이용됐다. 그런데도 ‘도미노 대출 규제’의 전방위적인 압박이 가속되고 있어 서민과 취약계층에 와 닿는 압박은 참으로 크다. 금융당국의 무조건적 일괄적 막무가내식 규제정책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카드론 이용자들의 연체율 부담을 낳고 있음을 직시하고 대출 규제가 오히려 서민부담과 취약계층 가계숨통을 옥죄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통찰하여 여건과 상황을 면밀히 분석한 실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대출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만 할 것이다.
올해 상반기 시중은행은 그야말로 역대급 초호황실적을 올렸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조달비용은 적고, 시장금리는 상승해 이익이 불어나는 환경이 지속되면서 조성된 영향이 크다. 은행은 이익을 어떻게 써야 할지 행복한 고민만 할 게 아니라 서민과 취약계층을 지원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의 마구잡이식 가산금리 인상에 문제점은 없는지 세심히 살펴보고 개선책을 서둘러 내놔야 할 것이다. 획일적인 금리 인상은 영세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그리고 서민과 취약계층에게 더 큰 피해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렵고 힘든 경제 현실을 감안하여 대출 가뭄 공포감과 대출금리 급상승에 시달리는 서민과 취약계층 압박 해소책을 서둘러 마련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