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 지구의 날이 올해 52주년을 맞았다. 환경 문제에 대한 범시민적인 관심에서 시작된 지구의 날은 오늘날 이상 기온 심화, 심각해진 환경 오염으로 그 제정의 의의와 중요성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최근 산업계 전반적으로 ESG 경영과 저탄소생활 캠페인 등을 실천하고 있는 가운데, 패션업계도 체질 개선 요구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모양새다. 한 때의 유행을 좇아 무분별하게 제품을 생산하는 SPA 업계의 ‘빠른 패션’ 대신 잘 고른 하나의 옷을 오래 입고 고쳐 쓰는 것을 미덕으로 제시하는 '바른 패션' 문화가 조성되고 있다.
유명 디자이너이자 환경 운동가인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덜 사고, 잘 고르고, 오래 입어라'라는 새로운 패션 행동 양식을 주장한다. 지구를 위해 무분별한 소비를 지양하고, 필요에 의해 새로운 옷을 살 때는 어떤 브랜드가 환경에 영향을 적게 미치는지 따져보는 소비자의 가치 판단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지구의 날을 맞아 여러 브랜드가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는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두 ‘찐환경’ 브랜드의 만남이다. 국내 대표 리사이클링 패션 브랜드 플리츠마마(PLEATSMAMA)가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INNISFREE)와 만나 지구의 날을 기념해 컬래버레이션 나노백을 선보인 것이다. 이번 컬래버레이션에는 이니스프리가 지난해 ‘공병 수거 캠페인’을 통해 모은 투명 공병 0.1t이 원료로 사용됐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플리츠마마는 주로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제품의 원료로 사용해 왔는데, 이니스프리와의 협업을 통해 처음으로 화장품 공병을 리사이클하고 새로운 원료의 재활용을 개척한 것이다.
의식있는 소비의 시작을 제안하는 미사이클(Me-Cycle) 브랜드 플리츠마마는 이처럼 가치소비와 관련해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을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지금은 다수 브랜드에서 폐페트병을 원료로 한 리사이클 제품을 선보이고 있지만, 이 행보의 첫 시작을 이끈 브랜드가 바로 플리츠마마다. 지난 2020년 환경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도개발공사가 주도한 플라스틱 재활용 시범 사업에 효성티앤씨와 함께 참여해 폐자원의 국산화를 최초로 이뤄낸 주역이라 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 수거한 폐플라스틱을 원사로 활용한 ‘러브제주’ 에디션을 시작으로, 이후 서울시, 부산시, 여수광양항 등으로 지역 자원순환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플리츠마마가 국내 친환경 패션을 선도하는 파이오니어(Pioneer) 브랜드로 평가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상품 생산을 포함해 모든 과정에서 친환경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플리츠마마는 제품 수명 연장을 위해 고객 과실 여부와 무관한 평생 무상 수선 서비스를 제공하고, 제품 패키지에 완충재를 없애 쓰레기를 최소화하며, 이동 시 발생하는 탄소를 고려해 국외 공장 위탁 없이 국내에서 모든 제품을 생산한다. 비즈니스 전방위적인 측면에서 탄소 감축을 목표로 나아갈 길을 고민하고 있다.
플리츠마마 왕종미 대표는 “플리츠마마는 환경에 주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패션 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플리츠마마가 패션 브랜드로서의 아이덴티티와 본질을 지키는 것이 올바른 방향성이라고 생각한다”며 “플리츠마마가 제안하는 ‘미사이클(Me-Cycle)’이라는 소비 개념은 제품 생산에서 순환이 끝나는 것이 아닌,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 오래 사용되기’에서 완성되는 것인 만큼 친환경 가치뿐 아니라 아름다운 디자인 구현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플리츠마마는 친환경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폐기물 감축을 통한 탄소 중립과 기후 위기 극복이라는 목표로 가먼트 리사이클링을 중점 과제로 연구하고 있다. 가먼트 리사이클링이란 폐원단을 재생 폴리에스터로 탈바꿈해 재고 및 폐기물을 줄이는 프로젝트로, 플리츠마마의 ‘플마랩’과 효성티앤씨의 ‘스마트랩’이 공동 연구 중이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물로 지난 11월 국내 최초로 단일 섬유 리사이클링 원사를 사용한 ‘새들백’을 출시하며 폐페트병에 이어 폐원단까지 성공적으로 상품화했으며, 현재는 폐어망을 포함해 더욱 다양한 소재를 연구하며 리사이클링 섬유의 외연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지구 환경을 생각하며 ‘덜 사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브랜드로는 파타고니아(PATAGONIA)가 대표적이다. 파타고니아는 2011년 <뉴욕 타임스>에 게재한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라는 광고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2013년부터는 ‘베터 댄 뉴(Better than New)’를 표방하며 원웨어(Worn Wear)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가로수길 매장 등 직영점 외에도 전국의 페스티벌과 아웃도어 현장을 찾아 가는 ‘원웨어 스테이션’ 트럭을 운영하며 찾아 가는 수선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외에도 파타고니아는 '지구세'를 도입해 해마다 매출액의 1%를 기부하고 기후 위기 대응 글로벌 네트워크 '지구를 위한 1%'를 통해 풀뿌리 환경 활동가를 후원하는 정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코오롱FnC가 전개하는 래코드(RE:CODE)는 지난 3월, 스타필드 코엑스에 수선·리폼 매장 ‘박스 아뜰리에’를 열었다. 전문 매장의 수선 서비스를 경험하며 현재 가지고 있는 옷을 더 오래 입자는 취지다. 이곳에 상주하는 전문가 ‘리메이커’는 고객과의 일대일 상담을 거쳐 서비스를 진행하는데, 일반 수선뿐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상품으로의 업사이클링까지 가능하다. 대표 예시로는 바지를 변형한 앞치마와 셔츠를 잘라 만든 에코백 등이 있지만, 고객 요청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변형할 수 있다. 박스 아뜰리에에서 재탄생한 아이템에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임을 알리는 숫자 ‘1’을 새긴 라벨을 붙여, 고객에게 환경 보호에 기여했다는 뿌듯함에 더해 특별한 ‘한정판’이라는 만족감까지 제공한다.
최근 박스 아뜰리에를 방문해 안 입는 셔츠를 조끼로 리폼한 한 소비자는 “헌 옷 처리 방법은 중고 거래나 기부 정도밖에 알지 못했는데, 리폼을 통해 완전히 다른 제품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니 신기하다”라며 “리폼은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기업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니 간편하게 재활용을 실천할 수 있고, 환경을 위한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뿌듯한 마음”고 말했다.
잘 고르고 덜 사는 ‘소비’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세엠케이가 전개하는 NBA의 ‘NBA 그린 위크’ 캠페인은 이 질문에 대한 일종의 답을 제시한다. 지구의 날을 맞아 ‘세상에서 가장 멋진 한 주’라는 슬로건 아래 진행되는 이 캠페인은 폐페트병 리사이클링 원사와 옥수수 유래 소재 등을 사용한 친환경 제품 공개에서 한 단계 나아가, 패션 인플루언서와 협업해 일상 속 에코 프렌들리 활동을 소개하고 동참을 권유한다. 제품 소비와 직접적 관련이 없으나 환경 보호에는 도움이 되는, 사소하지만 확실한 움직임을 제안하며 모두의 인식과 노력이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다양한 브랜드가 각기 다른 형태의 친환경 활동을 펼치고 있는 요즘이지만, 이들이 공통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일맥상통한다. 소비가 불가피하다면 지구에 가장 부담이 덜 가는 제품을 고르고, 일단 하나를 구매해서 사용한다면 그것을 최대한 오래 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 외에도 일상 생활에서 환경을 위하는 행동을 찾아 꾸준히 실천하는 일이 방법이라는 이야기다. 4월 22일, 단 하루만이라도 지구를 위한 의식있는 소비를 행동에 옮겨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