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푸드로 손꼽히는 토마토가 기후변화의 거센 압박을 받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기온 상승과 물 부족 현상이 심각한 미국은 농가들이 하나 둘 토마토 생산을 포기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8일 내셔널지오그래픽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세계 토마토 생산 4위인 미국은 악화되는 기후변화에 토마토 생산이 어려워지면서 농가들이 애를 먹고 있다.
세계 가공용 토마토의 약 30%를 생산하는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 농가들은 최근 몇 년간 급변한 생산 환경에 노출됐다. 일부는 대규모 산지를 갈아엎고 다른 채소를 알아보는 상황이다.
토마토는 생육 초기 기온이 너무 오르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2021년 초여름 기준 미국 캘리포니아는 한낮 기온이 38℃를 넘는 날이 열흘가량 이어졌다. 이는 지난 30년간 평균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이상 고온에 물 부족 사태도 벌어졌다. 토마토 파종을 막 끝낸 농가들은 “토마토는 특별히 민감한 식물도 아니지만 한계라는 것이 있다”며 “파종 직후, 모가 아직 어리고 노란 꽃을 피우는 시기는 온도나 습도 등 조건이 잘 맞아야 한다”고 전했다.
이들은 “날씨와 농업은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기후변화로 인해 농가는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며 “온난화는 기온상승, 물 부족은 물론 해충이나 질병의 북상 등 다른 피해를 동반하기에 토마토 생산은 위기에 몰렸다”고 강조했다.
2021년 캘리포니아를 강타한 열파는 토마토 작황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주내 토마토 생산 농가의 수확량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10%가량 줄었다. 큰 타격이 아닌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산 가공용 토마토의 90%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단 10%만 줄더라도 피자나 파스타 소스, 케첩 원료가 되는 토마토 공급에 대번 차질이 빚어진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토마토는 미국인들이 연간 소비하는 채소 상위 2위다. 1인당 연간 토마토 섭취량은 무려 14㎏이며, 채소 섭취량의 약 20%를 토마토로 충당한다.
토마토의 글로벌 소비량 역시 엄청나다. 통조림이나 페이스트 형태로 제조된 캔 토마토는 최대 소비국인 중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으로 공급된다. 미국과 남미, 아시아 전역에서 토마토는 골고루 소비된다.
캘리포니아에는 무려 480㎞에 걸친 대규모 토마토 산지가 분포한다. 기후변화로 농가가 타격을 입으면 글로벌 시장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대 생산국인 중국과 2, 3위를 차지하는 인도, 터키 역시 기후변화로 토마토 작황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오랜 세월 농사를 지어온 인류는 기후 문제에서 자유롭던 20세기 초까지 오로지 자연재해나 병충해만 신경 쓰고 살았다. 다만 도시화와 산업화로 환경 파괴가 가속화했고 탄소배출 탓에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지면서 토마토 등 주요 채소 생산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다.
문제는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것.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연구팀은 2020년 4월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미 남서부가 2000년대 들어 계속 가뭄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 범위가 점차 확대된다고 경고했다. 지난 1200년간 가장 심각한 가뭄은 토마토는 물론 물을 필요로 하는 모든 농작물의 생산량을 떨어뜨리고 있다.
고온 현상도 문제다. 지난해 세계 기온은 기록적으로 높았을 뿐만 아니라 대기는 유례없이 건조했다.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지난 30년간 캘리포니아주 토마토 생산지 센트럴밸리의 기온이 38℃를 넘는 날은 연평균 5일에 불과했지만 21세기 말에는 연간 40~50일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팀 관계자는 “만약 43℃가 넘는 최악의 폭염이 하루라도 있다면 토마토 수확량과 품질은 급격히 떨어지고 생산자 총수입의 약 1%가 피해 복구에 들어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책은 미미한 편이다. 2000년대 초 이후 대부분의 미국 농가들은 좁은 튜브로 식물 뿌리까지 물과 비료를 직접 전달하는 매립형 링거관수에 의지했다. 새로운 전략 덕에 물 사용량은 이전보다 약간 줄었지만 계속되는 물 부족은 감당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2년 넘는 팬데믹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공급망 문제, 인플레이션 등 갖은 악재가 터지면서 토마토 생산자들은 코너에 몰렸다.
전문가들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토마토 생산 농가들의 사정은 점차 어려워지는데 수요는 유지되면서 향후 토마토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기후변화 전문가 사라 스미스 연구원은 "토마토는 휘발유와 같아서 가격이 오른다고 소비를 줄일 수 없다"며 "지구온난화에 따른 피해를 가능한 늦추면서 토마토를 이전처럼 키울 아이디어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