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4.09.29(일)
[신형범의 千글자]...리틀 포레스트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일본 만화를 임순례 감독이 2018년 영상으로 리메이크한 것입니다. 공무원 시험에 떨어져 취업에 실패하고 잔뜩 풀이 죽어 고향에 내려온 혜원(김태리)이 혼자 밥을 차리고 챙겨 먹는 소소한 일상을 스케치처럼 그려냅니다.

다행인지 식재료가 많지 않고 돈도 없지만 요리할 시간은 넘쳐납니다. 제 입에 들어갈 먹거리를 제 손으로 마련해 요리하고, 남는 시간엔 친구들과 한가롭게 노닥거리는데 영화는 계절과 함께 자연의 리듬으로 흘러가는 시간에 집중합니다.

그러니 갈등, 반전은 말할 것도 없고 이렇다 할 변변한 사건조차 없습니다. 기껏해야 벼락치는 밤에 강아지를 끌어안고 잤다거나 비바람에 쓰러진 벼이삭을 이모와 함께 일으켜 세웠다는 정도? 그런데도 이처럼 시시하고 심심한 영화에서 힐링을 얻었다는 관객들의 호평이 개봉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관객들에게 평범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이 조용한 행복감을 주면서 부드럽게 위로해주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아마도 원작 만화 자체가 갖고 있는 메시지를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게 현실적이면서 일상의 언어로 토닥여 주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첫째, 포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포기를 통해 자신에게 좀 더 가까워지고 편안해질 수 있다. 둘째, 돈보다 시간이 많아지면 돈으로 사지 않아도 되는 보다 본질적인 것, 중요한 것, 불완전하지만 진짜 아름다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셋째, 포기하고 능력이 없어도 불행한 건 아니다. 장 자크 루소의 말처럼 인간이 자연 상태에 가깝게 있으면 능력과 욕망의 차이는 점점 적어지고 행복으로부터는 그만큼 덜 멀어진다는 걸 깨닫게 된다.

결국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밖에도 영화는 시골살이의 장점을 보여줍니다. 공부 못하고 스펙이 달려서 경쟁에서 낙오해도 고향 시골은 넉넉하게 다 받아줍니다. 시골에선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자신이 사장이 되어 일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불합격도 해고도 없습니다. 또 원하는 게 있으면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게 많습니다. 그 과정에서 창의력을 발견하게 되는 곳이 바로 시골입니다.

무라카리 하루키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서 “그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한 뒤 마시는 차갑게 얼린 맥주 한잔 같은 것”이라고 한 ‘소확행’의 자잘한 예를 모으면 바로 이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될 것 같습니다. 습하고 무더운 날이 이어지는데 잠시 더위를 잊고 숨을 고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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