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4.07.04(목)
신형범
신형범
재미있게 ‘본방사수’하던 드라마 《졸업》이 엊그제 끝났습니다. 대치동 입시학원을 배경으로 학원강사들의 일상과 사랑을 그렸는데 나에게는 현재 입시환경을 둘러싸고 있는 공교육의 현실과 사교육 현장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국어는 근본 중의 근본이에요. 홍경래의 난이 무슨 난초 이름인 줄 아는 애들한테 문제집만 던져주고 예상문제 찍어주고 동그라미 세모나 치게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말부터 가르칠 겁니다. 애들 세계를 확장시키고 상상할 수 있게 만들 거예요.”

“이 입시가 생긴 이래 그런 방법은 단 한번도 성공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 없어요.”

국어 과목을 가르치는 강사 둘이 교육관의 차이로 말다툼을 벌이는 장면입니다. 지향점이 서로 다르지만 두 사람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습니다. 저런 고민을 하는 선생들이 있다는 게 기특할 정도입니다. 아이러니한 건 이런 건강한 논쟁이 학교가 아니라 대치동 입시학원에서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드라마를 보고 알게 된 사실인데 내신등급을 위해 학원들은 학교 선생님들의 출제경향까지 분석하고 예측해 아이들에게 예상문제를 나눠준다는 겁니다. 입시학원의 적중률이 높아지고 학생들의 성적이 상향 평준화되자 학교나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평가원들은 변별력을 높이고 난이도를 조절하기 위해 점점 더 복잡하고 패턴화, 정형화된 퍼즐 문제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입시학원들은 이에 대응하는 새로운 공략법을 만들어내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이 과정에서 사교육 의존도는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전공자들도 어려워하는 문제를 제한시간 안에 학생들이 다 풀려면 전문 입시학원의 스킬 없이는 불가능한 지경에 이릅니다.

앞서 얘기한 드라마 장면 같은 일이 실제로 학원에서 일어나는지 모르겠지만 이쯤 되면 안 그래도 희미한 사교육과 공교육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집니다. 입시학원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커진 상황에서 학원강사는 과거 학교 선생님이 교육자로서 누리던 권위와 지위를 갖기도 합니다.

물론 사교육 종사자들 중에도 정말 존경할 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강사와 수험생의 관계가 단순히 서비스 공급자와 구매자의 거래관계로 끝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격적 교류와 상업적 거래가 학생이나 강사 스스로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섞입니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학교와 학원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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