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4.09.17(화)
[신형범의 千글자]...사람의 나이테

나무에 대해 잘 모르지만 어디서 읽었는데 느티나무는 2백 살쯤 돼야 목질이 좋다고 합니다. 나무를 잘라 보면 동서남북 방위에 따라 목질이 다릅니다. 같은 나무라도 북쪽은 성장이 더뎌 남쪽보다 촘촘하고 더 단단합니다. 또 같은 느티나무라도 물가에서 자란 녀석은 옹골차지 못하고 자갈밭에서 자란 놈은 나이테를 따라 균열이 있습니다.

사람도 비슷합니다. 단단하고 꽉 찬 부분이 있는가 하면 유연하고 나약한 구석이 있습니다. 어떤 시절은 열정적이고 뜨거웠으며 어떤 시기는 춥고 고달팠을 것이며 어떤 구간은 스스로 자랑스러운 시기였으며 아무리 봐도 후회 뿐인 시점도 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어떤 힘과 속도로 살았느냐에 따라 생긴 모양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우아하고 멋있는 단면이 나타납니다. 그 사람이 지닌 삶의 무늬입니다. 다른 사람은 애써 감추려고 하지만 탐욕스런 단면이 보이고 또 다른 사람은 잘라보지 않아도 천하게 살아온 무늬가 뚜렷하게 보입니다.

지방에서 요양원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우리 사회는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는 뚜렷하게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노년기에 접어들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잘 나누지 않는다. 나이 들면 그저 ‘노인’일 뿐이다. 60대든 70대든 80대든. 여기 들어오면 다 똑같다. 제아무리 돈 많고 권력을 누린 사람도, 많이 배운 교수도 소용없다. 들어오는 순간 그냥 노인일 뿐이다.”

지난 봄에 나는 환갑이 됐습니다. 사정이 있어 내가 만약 요양원에 들어간다면 그의 말 대로라면 나도 그저 ‘노인’일 뿐인 나이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일주일에 서너 번씩 가는 동네 피트니스센터에서 얼굴을 익힌 사람들은 나를 젊다고 말해 줍니다. 물론 인사치레일 것입니다. 그들은 나보다 최소 대여섯 살은 위인 분들입니다. 대한민국이 초고령사회에 들어섰음을 실감합니다.

나는 지금 수준의 정신적, 정서적 긴장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책을 읽고 내가 모르는 분야의 전문가들을 찾아 배우고 익힙니다. 먹는 걸 좋아하지만 가능한 식생활을 절제하고 유산소운동은 조금씩 줄일 참입니다. 대신 근력운동을 늘려 근육이 빠지는 걸 막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글쓰기는 계속할 것이며 글감을 찾기 위해 늘 안테나를 예민하게 세울 것입니다.

나이 들면 지혜로워진다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노인이 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뿐입니다. 젊은이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합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후진국일 때 태어나 개발도상국을 경험했고 지금은 선진국에 삽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선진국에서 태어나 선진국에 삽니다. 생각과 문화의 차이가 너무 뚜렷해서 대화가 안 통하는 경우라도 젊은이들을 탓하지 않고 내 생각을 다시 돌아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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