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4.09.18(수)
사진= TV방송 캡쳐
사진= TV방송 캡쳐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 《굿파트너》의 작가는 실제 현직 이혼전문 변호사입니다. 그동안 자신이 맡았던 이혼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상상력을 더하고 극적인 요소를 가미해 대본을 썼다고 했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이혼 사례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황당한 이혼 사유들이 실제로는 훨씬 많다는 게 작가의 말입니다.

이혼이 부끄럽거나 쉬쉬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아니고 삶의 여러 모습 중 하나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건 꽤 오래 됐습니다. 부부가 헤어지는 이유와 형태도 다양해졌습니다. 20여 년 전, 일본에서 졸혼이 이슈가 됐을 때 우리에겐 낯설었지만 지금은 익숙해졌고 해혼(解婚), 황혼이혼도 낯설지 않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눈에 띄는 현상은 사후 이혼입니다. ‘사후(死後) 이혼’은 사망한 배우자의 친족과 관계를 단절하는 행정행위로 ‘법적 이혼’과는 다릅니다. 사별한 배우자와 굳이 이혼하려는 이유는 혼인으로 맺어진 인척관계 때문입니다. 보통은 남편이 나이가 많고 평균수명은 아내가 길기 때문에 사후 이혼을 신청하는 쪽은 대개 아내입니다. 특히 시부모 간병이나 시부모의 간섭 또는 부양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이 큽니다.

이 밖에 세대간 인식 차이도 영향을 미칩니다. 여기엔 결혼을 보는 가치관의 변화가 한몫 합니다. 집안과 집안이 인연을 맺는 의미는 축소되고 남녀간 결합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그래서 사후 이혼이 결정되면 인척관계가 종료되어 시댁이나 처가와의 인연을 끝낸다는 뜻입니다. 또 기대수명이 늘어나 노년의 행복을 포기할 수 없게 된 것도 이유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과 같은 형태의 사후 이혼은 법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민법에 ‘인척 관계 청산’ 절차를 따로 규정한 게 없기 때문입니다. 배우자와 사별 후, 다른 사람과 재혼해야만 비로소 법적으로 인척 관계가 정리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졸혼처럼 사후 이혼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늘어나면 우리도 비슷한 절차가 생겨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초고령화 속도와 고부갈등 정도를 보면 사후 이혼이 일본의 얘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부부가 죽음으로 헤어질 때 ‘먼저 가 있겠다’거나 ‘나중에 보자’고 합니다. 죽음이 부부의 인연을 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평생 온갖 일을 함께 겪은 인생 동반자라는 유대의식도 크고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지만 그 모든 사연과 감정과 관계들이 사후 이혼으로 지워지고 만다면 몹시 아쉬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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