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4.10.02(수)
[신형범의 千글자]...안하무인 엘리트의 나라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 10년 만에 던진 화두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마이클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는 오늘날 미국사회의 공동선(共同善)을 파괴하는 폭군’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말은 미국 역사에서 지금처럼 오만한 엘리트는 없었고 이들의 행태가 지금처럼 공동체에 해를 끼친 적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나는 이 말이 더 잘 적용되는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만과 안하무인으로 치자면 한국 엘리트들을 따라갈 나라가 없습니다. 의대 입학정원을 2천 명을 늘리겠다고 하자 엘리트 의사들이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그들도 할 말이 있겠지만 결과는 전공의들 사직 공백이 길어지면서 대한민국 환자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의사들은 환자와 시민을 ‘견민’ ‘개돼지’ ‘조센징’으로 부르며 조롱하거나 “(환자가)응급실을 뺑뺑이 돌다 죽어도 아무 감흥이 없다” “더 죽어서 뉴스에 나왔으면 하는 마음 뿐” 같은 패륜적인 글을 올렸습니다.

판사는 또 어떤가요. 고위직 판사가 재판에 개입하거나 재판을 두고 정부와 거래한 초유의 사법 농단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문은 어처구니없었습니다. ‘수석부장판사의 재판 개입은 월권이지 권한남용은 아니어서 직권남용죄는 무죄’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사법 농단을 벌인 자는 누구도 처벌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국민을 우롱하는 오만한 엘리트의 궤변입니다.

또 다른 엘리트 집단인 검사들. 피의자에게 상식을 넘어서는 향응을 받은 검사들을 기소하지 않고 누가 봐도 비리 투성이인 검찰 출신 전 법무부차관 사건을 ‘봐주기 수사’로 결국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대학교수라고 다른가요. 표절이 확실한 대통령 부인의 논문에 대해 눈감고 넘어가자고 결의한 교수들과 대기업 사외이사로 거액의 거마비를 챙기면서 거수기로 전락한 교수들이 부지기수입니다.

한국 엘리트들의 이런 오만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한국은 세계 최고의 경쟁교육으로 악명 높습니다. 이른바 ‘스카이’를 나온 이들은 자신이 누리는 부와 권력을 자신의 재능과 노력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학교라는 전쟁터에서 쟁취한 전리품이라고 여기니까 오만해질 수밖에요.

대중을 깔보는 오만한 엘리트들이 유독 한국에 많은 이유는 잘못된 교육 탓이라고 봅니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용서되는 교실에서 12년 동안 자란 아이가 어떻게 성숙하고 인성을 갖춘 기품 있는 인간이 되겠습니까. 소수의 오만한 엘리트와 다수의 열등감에 시달리는 대중을 낳는 능력주의 경쟁교육은 이제 끝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합니다. 모든 아이가 예외 없이 존엄한 인간으로 인정받고 존중받고 사랑받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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