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4.10.08(화)
[신형범의 千글자]...스스로 잠을 줄이는 동물
퀴즈 하나. 기억력, 창의력을 높여주고 암과 치매를 예방합니다. 식탐이 줄고 피부가 매끈해지며 몸매가 날씬해집니다. 면역력을 높여 감기와 독감을 막아주는 건 물론 심장마비와 당뇨병 발병도 줄여줍니다. 또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이 것은 무엇일까요? 이런 약이 있다면 혹시 사시겠어요? 이 약의 이름은 바로 ‘잠’입니다.

과학자들은 잠이 생화학적으로 멜라토닌과 아데노신이라는 두 가지 물질이 작용해 만들어낸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몸에 멜라토닌 농도가 높아지면 몸 전체에 잠을 자라는 명령이 내려집니다. 멜라토닌 농도는 주기적으로 변하는데 밤에 높고 낮에는 낮아집니다.

아데노신은 깨어 있는 동안 계속 증가하는 물질입니다. 잠을 자야 줄어듭니다. 아데노신이 쌓이면 점점 피로하고 졸음이 옵니다. 밤을 꼬박 새면 몸에 아데노신이 가득 차서 졸음이 극도로 쏟아집니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멜라토닌이 줄어들어 일시적으로 정신이 또렷해질 수는 있습니다. 커피 같은 각성제는 아데노신을 만들어 잠이 필요한데도 피로와 졸음을 못 느끼게 합니다. 결국 잠은 멜라토닌과 아데노신의 협력으로 만들어집니다.

인간의 적정 수면시간은 8시간 정도입니다. 적어도 7시간은 자야 문제가 없습니다. 침팬지나 원숭이 같은 영장류는 보통 10~15시간을 잡니다. 이에 비하면 인간은 잠이 적은 편입니다. 8시간 수면이라도 사람마다 자는 패턴이 다릅니다. 크게 보면 새벽에 일하는 아침형 인간과 밤에 말똥말똥해지는 저녁형 인간이 있는데 이는 유전자의 영향이 가장 큽니다.

어쨌든 모든 동물은 잠을 잡니다. 코끼리 사자 상어 개구리는 물론 나비와 지렁이도 잠을 잡니다. 잠을 못 자면 치명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하는지 완벽히 알지 못합니다. 혹시 밤이 있으니까 잠을 자는 게 아닐까, 의심해보지만 인간은 밤이 없어도 잡니다. 사람을 격리시켜 시간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실내조명만으로 생활하도록 해도 여전히 규칙적으로 잠을 잡니다. 그 주기는 대개 24시간입니다. 우리 몸에는 외부환경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몸의 시계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른바 생체시계입니다.

근대과학은 밤의 일상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18세기 고래기름, 19세기 석탄가스, 20세기 전기를 이용한 가로등이 밤의 어둠을 몰아내자 이제 밤은 사교와 오락, 누군가에겐 야간 노동의 시간이 됐습니다. 인간은 밤을 정복한 대신 그 대가로 잠을 빼앗겼습니다. 이렇게 얻어진 수면부족은 근대의 슬픈 발명품 중 하나가 됐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잠을 줄이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모두들 숙면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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