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4.12.27(금)

국가기관 성폭력, 여가부 장관에 즉시 통보
지난해 7월 '의무통보제' 시행 후 42건 접수
국방부·환경부 늑장통보…은폐에 제제 없어

[비욘드포스트 김형운 기자]
최근 1년간 국가기관에서 발생한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최소 42건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기관에서 성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현행법에 따라 여성가족부에 통보해야 한다.

4일 뉴시스에 따르면 구체적 숫자가 집계된 건 관련법이 시행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지난해 7월13일 시행된 성폭력방지법과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르면 국가기관장은 성폭력 사건을 인지하면 피해자의 명시적 반대가 없는 한 여가부 장관에게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 또 3개월 내에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해 제출해야 한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17층 (여성가족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17층 (여성가족부)


4일 뉴시스가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8월까지 여가부에 통보된 성희롱·성폭력 사건은 총 42건이다. 정부 기관에서 한 달에 3번꼴로 성비위가 발생한 셈이다.

여가부는 이 중 해군 여중사 사망사건·인하대 성폭행 추락사 등 5건에 대해 현장 점검을 실시했다. 재발방지책을 제출한 사례는 29건으로, 나머지 13건은 아직 제출기한이 도래하지 않았다.

여가부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우려해 기관별 발생 현황은 제출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언론에 보도된 사례를 살펴보면, 국방부와 환경부 등 일부 부처는 사건을 인지하고도 여가부에 알리지 않다가 언론 지적 후 뒤늦게 통보했다.

특히 성폭력 사건이 연이어 일어난 국방부의 경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통보가 늦어지면서 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군은 지난해 8월9일 여군 중사 사망 사건을 접수하고도 같은 달 13일까지 여가부에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당시 뉴시스 취재 결과 파악됐다. 최근 공군 제15특수비행단 성추행 사건도 '피해자가 원하지 않았다'며 알리지 않다가 피해자가 여가부 개입 의사를 밝히고 며칠이 지나서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해당 기관이 사건을 숨기더라도 현재로선 제재 조항이 없다는 점이다. 당초 국회에서 발의된 법은 사건을 통보하지 않으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었으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삭제됐다.

여가부에 제출된 재발방지책도 '2차 피해'를 우려로 공개되지 않아 어떤 점을 보완하겠다고 약속했는지 알 수 없는 실정이다. 권력형 성범죄 은폐를 막겠다는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사건 통보와 재발방지책 공개가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군인권센터 출신 방혜린 예비역 대위는 "재발방지책을 공개하지 않는 건 부적절하다고 수 차례 지적해 왔다. 성폭력 사건이라 2차 가해를 핑계로 대기 쉬운데, 개인정보를 빼고 공개하면 될 일"이라며 "정확한 수치와 후속조치를 알려야 어떤 점이 잘못됐는지 진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는 통보 의무 위반 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재발방지책을 공개하도록 하는 성폭력방지법 개정안(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안)이 발의돼 있다. 향후 여가부가 폐지돼 법무부 등으로 업무가 이관되더라도 실효성 있는 제재 조치는 필요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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