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장관을 지냈고 시대의 지성을 이끌었던 이어령 교수는 생전에 ‘명사 말고 동사로 생각하라’는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묻는 사람들에게 생일파티를 예로 들었습니다. 케이크의 촛불을 끌 때 ‘끔’이 아니라 ‘끄다’라고 생각하라고. 그러면 다음 생일에 다시 ‘켜다’라는 생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명사로 생각하면 거기서 생각과 행동이 끝나지만 동사로 생각하면 더 나아갈 수 있고 또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는 설명입니다.
더 쉬운 예가 있습니다. 아주대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는 “XX이가 사람을 죽였대”와 “XX이가 살인자래”라는 말을 비교합니다. 전자를 들은 사람은 “왜 죽였대?” “누구를 죽였대?”라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반면 후자를 들은 사람은 “저런 나쁜 놈”으로 끝난다는 것이지요.
김 교수는 명사가 인간으로 하여금 생각을 안 하게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이 생각의 양을 줄이려고 만든 독특한 품사라고 설명합니다. 대표적으로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때 보면 세상 허망한 말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 같은 구호입니다. ‘살기 좋은 나라’란 대체 어떤 나라인가요. 실체도 비전도 방법도 없습니다. 좋은 말인 건 알겠는데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대부분 후보들은 명사와 그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로 가득한 공약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아무리 뜯어봐도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저 대통령이 목표인 사람은 운이 좋아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그 다음에 할 일이 없습니다.
회사에서 일 잘하는 후배 사원에게 물은 적 있습니다. 목표가 무엇이냐고. 그 친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회사 사장이 되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사장 자리에 올라가는 것 말고 사장이 돼서 뭘 하고 싶은지,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은지, 이루고 싶은 건 무엇인지. 그랬더니 그 친구는 갑자기 말이 없어졌습니다.
도달하고 싶은 삶의 지향점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그 젊은 후배라면 물류, IT를 통합한 최초의 온라인 유통회사 사장 같은 역할과 방향성이 있어야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나옵니다. 그런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사장도 되고 특정 지위를 얻는 것이지 사장 그 자체가 목표여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심지어 가족도 비슷한 속성이 있습니다. 가족은 완성된 의미로서 세상에 존재하는 ‘무엇’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관계 안에서 누가 무엇을 하며 어떤 가족이 되기를 실천하느냐에 따라 성격과 형태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족은 사물의 본질적인 성격을 상정하는 명사가 아니라 사물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도 움직이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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