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4.11.26(화)
[신형범의 千글자]...이번 기회에 책 좀
처음엔 놀랐고 그 다음엔 기뻤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가볍고 얄팍한 대중이 점점 미워지면서 나중에는 불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얘기입니다. 작가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채식주의자》는 하루만에 30만 부가 팔렸고 서점은 아침부터 ‘오픈런’과 ‘품절대란’이 벌어졌습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책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읽었다고…

한국은 책 안 읽는 나라로 유명합니다. 성인 1인당 월 평균 독서량은 미국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인데 한국은 0.8권입니다. 2023년 조사에선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안 읽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문화평론가 마이틸리 라오는 몇 년 전 《뉴요커》 칼럼에 “한국인들은 책은 읽지 않으면서 노벨문학상에만 목맨다. 상보다 한국문학에 더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썼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나는 막연히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으면 좋겠다고는 생각했었습니다. 근거가 약(하다고 생각했던)한 바람이 이뤄진 것도 기쁘지만 내가 이번 수상이 더 기분 좋은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첫째, 다른 작가가 아니라 한강이라는 점입니다. 후보에 몇 번씩 올랐고 또 노벨상에 욕심을 가진 한국 작가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들은 한국 문단에 ‘거장’이라는 이름으로, 특히 남성 중심의 ‘문화권력’으로 자리잡은 작가가 대부분입니다. 만약 그들 중 하나가 수상했더라면 ‘겸손’을 과장하면서 가뜩이나 공고한 기성 권력을 휘두를 게 뻔합니다. 악의로 기득권을 행사하진 않더라도 문단에, 출판계에, 나아가 문화 전반에 영향력을 끼칠 것입니다. 그런데 한강은 그런 작가가 아닙니다. 불이익을 당해도 묵묵히 자기만의 언어와 문학을 창조하고 벼리며 세계를 꾸려가는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동족에게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무시하고 혐오하면서 심지어 사상적 프레임을 씌워 폄훼한 권력과 그런 사람에 대한 약간의 복수 같은 기분이 들어서입니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 1980년 광주와 1947년 제주의 피해자가 섰던 자리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시선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 땅의 꼴통들에게 한방 먹인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은 작가의 작품을 불온서적으로 분류해 폐기하게 만들고 문화예술계 문제 인사로 낙인 찍어 지원 대상에서 배제시켰습니다. 광주와 제주 사람들에게, 또 한국의 강고한 가부장제 문화에 고통받았고 지금도 고통받는 한국 여성들에게도 작은 위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한강은 수상소감으로 한국문학의 새 영토를 개척해 온 선배들에게 공을 돌렸습니다. 선배 작가들도 한강 덕분에 이제 노벨상 발표 때가 되면 전화통 곁을 떠나지 못하던 옹색한 처지를 벗게 됐습니다. 대한민국의 오랜 노벨상 강박에서 해방시키는 데도 한강이 기여한 셈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면 한강처럼 상에 연연하지 않고 쓴 작품이 상을 가져오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누구 말마따나 우리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모국어로 읽을 수 있다는 건 자랑스럽고 기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상(賞)이 작가와 작품의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건 아닙니다. 솔직히 한강 못지 않은, 어쩌면 한강보다 더 대단한 작가들이 지금 대한민국에는 많습니다. 상을 받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매일 시와 소설을, 문학을 읽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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