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4.11.26(화)
[신형범의 千글자]...40년 전과 지금
대학에 입학하고 입시에 대한 부담감이 사라지자 신입생 때 제법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백지 상태의 뇌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 충격을 줬던 소설 중 하나를 최근 다시 읽었습니다. 거의 40년 만입니다. 내용은 흐릿해지고 윤곽만 어렴풋하지만 밤이 깊은 줄 모르고 가슴 설레며 책장을 넘기던 기억은 선명합니다.

저자는 당시 한국 문단을 휘어잡고 있던 우상이었습니다. 문단의 황제와도 같았던 그가 언제부턴가 독자들을 실망시키며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갔습니다. 시대착오적인 보수성이 이곳저곳에서 노출되면서부터입니다. 그의 문학에서 가족사 속 몰락한 양반계급에 대한 짙은 향수를 느낀 건 나만 그랬던 게 아니었나 봅니다.

한 사람의 삶을 이념적 잣대 하나로 간단히 재단하거나 보수와 진보를 선악의 개념으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삶의 속도가 같을 수 없고 각자의 인생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변화에 소극적이며 시대와 불화하는 극단적 보수는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합니다. 반면, 진보는 완급을 조절할 수 있을 때에만 존속이 가능합니다.

보수성과 진보성향은 선천적 기질에도 영향을 받지만 그보다는 후천적, 환경적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급변하는 세상에 뒤처지고 소외될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대표적으로 태극기 부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늙은 맹수의 마지막 울부짖음 같습니다. ‘라떼는 말이야’ 라는 황폐한 자존감에 연민이 느껴집니다. 진보를 표방하는 맹신적 태도를 지닌 중장년도 신념과 달리 서로 닮아가는 이유일 것입니다.

빛나는 재능을 지닌 작가와 찬란한 특권을 누리던 이들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청년들은 앞 세대가 누렸던 풍요의 상실에 현재를 증오합니다. 오래 서서 기다리던 줄이 바로 자기 앞에서 끊어진 자의 짜증스러운 심정처럼 세상이 불공평해 보입니다.

자신을 보수로 생각하든 진보로 여기든 남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고루함과 배타성을 지닌 이들의 특징은 유사합니다. 과거에 존재했던 학벌, 지역, 계급, 연고, 성별 등 무수한 차별 권력이 원래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라 믿는 선민의식입니다.

드러나는 일부 사람들의 유아적 언행이 청년세대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청년세대의 삶이 녹록하진 않지만 부모세대와 이전 세대 역시 고통스러운 역사를 온몸으로 통과하면서 대다수는 함께하는 세상을 위해 노력해 왔음을 인정하는 데서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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