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4 08:49  |  오피니언

[신형범의 포토에세이]...나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됐을까?

[신형범의 포토에세이]...나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됐을까?
[비욘드포스트 이순곤 기자] 요즘 핫한 작가 김영하의 산문집 《단 한 번의 삶》에서 본 얘기입니다. 직업군인이던 작가의 아버지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면 어린 영하 형제를 데리고 목욕탕부터 갔습니다. 샤워시설이 갖춰진 집이 흔치 않던 1970년대에 아버지가 아들들을 데리고 공중목욕탕에 가는 건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작가와 비슷한 또래인 내 세대 사람이라면 목욕탕과 관련한 추억 몇 개쯤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입니다. 물장난을 치다가 동네 어른한테 야단맞은 것부터 불리기만 하고 때를 밀지 않은 상태로 집에 와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거나 목욕을 마치고 평소엔 먹기 힘든 야쿠르트나 찐빵을 먹었던 기억 같은.

하지만 김영하의 추억은 마냥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하루는 신발장에 넣어 둔 아버지의 신발을 누가 훔쳐갔습니다. 영하 형제는 집에도 가지 못 하고 화난 아버지가 목욕탕 주인과 싸우는 걸 숨죽이며 지켜봐야 했습니다.

국민학생이던 작가는 목욕탕의 벌거벗은 손님들이 보는 가운데 주인과 대거리하는 아버지가 부끄럽고 싫었답니다. 지금 쉰일곱 살이 된 작가는 “그때 아버진 마흔이었고 지금 나보다 열대여섯 살이나 어렸던 젊은 아버지의 행동을 지금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부모는 언젠가는 아이를 실망시키고 우리도 언젠가는 누군가를 실망시킬 수 있다는 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만큼이나 자명한 진리입니다. ‘나이 들어 좋은 점은 그 사람이 나에게 해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해서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이라는 작가의 고백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스페인 한 도시의 카페 창 밖에서 찍은 중년 남자를 보면서 옛날 나의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모르는 게 없는 어른일 때도, 누구와 싸워도 이길 것 같은 힘센 아버지일 때도 있었지만 내 뜻을 몰라줘서 원망스러울 때도, 아버지라면 절대 그러지 않을 것 같은 다른 모습에 실망한 적도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선 누구든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예순을 갓 넘긴 나는 아버지가 나에게 남긴 것들을 생각하며 내 자식들이 볼 나의 모습에 대해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나 또한 언젠가는, 아니 이미 자식에게 실망을 안겨준 아버지일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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