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으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4300억원대 배임·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중근(78) 부영그룹 회장 측이 항소심에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다만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봐달라"고 주장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28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 등의 항소심 첫 공판을 진행했다.
이 회장 측 변호인은 "불명예스럽게도 이 자리에 선 이 회장은 부영그룹의 최고 경영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매사에 적법하게 업무를 처리하려 노력했고 범죄를 저지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재판받는 모든 상황에 이 회장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어 "부영은 이 회장이 평생을 걸쳐 임직원과 일군 기업으로 1인 회사이자 가족회사고, 비상장회사다. 그러다 보니 절차적 합리성이나 투명성이 다소 부족해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며 "계열사 전체 이익을 위한 행위라고 하지만, 법의 잣대로 보면 잘못된 일 처리로 판단될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수긍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변호인은 "문제 되는 이 회장 행위로 인해 다른 주주들이나 회사 채권자, 종업원에게 재산상 손해를 끼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며 "이 회장은 나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충분히 인식하고 다양한 사회공헌 및 국내 기부활동을 활발히 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기소 초기 단계에서 '이 회장이 서민에게 피해를 입힌 악덕기업주'라는 여론이 형성돼 편견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부디 이 회장이라는 한 인간을 평가함에 있어서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봐주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검찰은 "배임에서 유죄로 인정된 부분 중 최소한 다툼이 없는 1450억원 이상이 인정돼야 한다"며 "해외부동산 구입 관련해서도 자제들의 미국 거주를 위한 주택구입자금으로 사용돼 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1심에서 무죄로 판단된 임대주택법 위반 혐의도 실제 투입된 건축비보다 많은 비용이 분양 전환됐기 때문에 유죄로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과 변호인의 구체적인 항소 이유는 다음달 25일 오후 2시5분에 열리는 항소심 2차 공판에서 밝히기로 했다. 재판부는 4가지로 나눠 공소사실별로 변론을 분리해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부영주택 등 임대아파트 분양 전환 과정에서 불법으로 분양가를 조정해 부당 이득을 취하는 방법 등으로 4300억원대 배임·횡령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와 함께 법인세 36억2000여만원을 포탈하고, 일가에서 운영하는 부실계열사 채권을 회수할 목적 등으로 임대주택사업 우량계열사 자금 2300억원을 부당 지원하거나 조카 회사에 90억원 상당 일감을 몰아준 혐의도 받는다.
앞서 1심은 "장기간 다양한 방식으로 계열회사 자금을 개인적 이익을 위해 사용했다"며 이 회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보석을 그대로 허가하고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1심은 이 회장 혐의 중 420억원대 횡령·배임 일부만 유죄로 판단했다. 특히 이 회장이 2004년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사건에서 회사 자금으로 벌금을 대납하게 한 혐의는 죄질이 나쁘다고 지적했다. 다만 임대주택법 위반 혐의 등 대다수 공소사실은 증명이 부족하다며 무죄로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