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리 해체, 트럼프 대통령 주요 외교 성과로 내세워 북미 비핵화 협상 연말 시한 전 긴장감 갈수록 고조 2017년으로 돌아가나…'말 폭탄'에 이어 동창리까지 김정일 사망 8주기인 17일 전후 강경 메시지 나올 듯
북한이 지난 7일 서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중대한 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연말 비핵화 협상 시한 전 대미 압박을 강화하고, 동시에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등 다목적 포석을 둔 조치로 풀이된다.
조선중앙통신은 8일 오전 국방과학원 대변인 발표를 통해 "2019년 12월7일 오후 서해 위성 발사장에서는 대단히 중대한 시험이 진행됐다"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방과학원은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이번 시험의 성공적 결과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중앙통신은 그러면서 "이번에 진행한 중대한 시험의 결과는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또 한번 변화시키는 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북한이 구체적인 시험 내용에 대해 밝히지 않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북한·군사 전문가들은 ICBM급 미사일의 고체연료 시험이나 화성-15형 등에 사용된 백두산 엔진의 성능 개량 시험 등이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북한이 '중대한 시험'을 했다고 하는 서해 위성 발사장은 우리에게는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으로 더 잘 알려진 곳으로 그동안 북한의 ICBM 개발의 한 축을 이룬 장소다.
북한은 이곳에서 지난 2012년 ICBM급으로 평가되는 '은하3호' 로켓을 발사하고 2016년 2월에는 광명성 4호를 쏘아올렸다. 국제 사회에서는 이를 ICBM이라고 비판했지만,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였다고 주장했다.
또 2017년 3월에는 ICBM급 화성-14형, 화성-15형 등에도 사용된 백두산 엔진의 연소 시험 등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북한은 백두산 엔진의 지상분출을 두고 '3·18 혁명'이라고까지 선전했다.
그러다 지난해 4월20일 북한이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핵과 ICBM 시험을 중지하겠다고 선포한 뒤, 같은 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 북미관계가 해빙 무드에 접어들면서 발사장 일부가 해체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의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해체 움직임을 자신의 주요한 외교 성과 중 하나로 내세우고 높이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동창리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합의하기까지 한다.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중대한 시험'을 '성공'했다고 발표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를 깰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플로리다주로 향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미국에 적대적으로 행동한다면 놀랄 것"이라면서 "그(김정은)는 내가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가 미국 선거에 개입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고려할 때,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의 시험은 어떤 종류였든 간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이 일종의 '레드 라인'을 넘나드는 행위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도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위원장 선거 개입' 발언에 앞서 "지금은 미국과 긴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며 "비핵화는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서 이미 내려졌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다만 이날 북한의 동창리 시험 보도가 매우 짧게 나왔고 구체적 시험 내용과 김정은 위원장의 참관 여부 등이 보도에 없는 것으로 봤을 때, 북한이 아직은 협상의 문을 열어놓고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연말이라는 협상의 물리적 시간 등을 고려했을 때, 북한의 이 같은 조치가 형식적인 수준에서 협상의 문을 열어놓은 것이라는 지적도 대립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대화의 문을 완전히 걸어 잠근 상황은 아니다"라며 "엔진 시험을 통한 미국의 압박 겸 새로운 길을 위한 준비운동 단계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김정은이 참관하지 않았고 내용도 밝히지 않은 점에서 연말 시한인 북미대화는 지키려는 것일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김 교수는 "아직은 미국의 새로운 셈법을 기대하며 수위 조절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큰 기대보다는 신년사를 앞두고 이미 자신들의 계획표대로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자신들이 판을 엎었다는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수위 조절을 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스톡홀름 비핵화 실무협상 결렬 이후 비핵화 협상이 진전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북미는 지난 2017년 하반기에 있던 '말 폭탄'을 연상시킬 만큼 거친 언사를 최근에 주고 받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런던을 방문해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시사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향해 '로켓맨'이라고 호칭했다.
그러자 박정천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합참의장급)이 4일 이례적으로 담화를 내고 "미국이 우리를 상대로 무력을 사용한다면 우리 역시 신속한 상응행동을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하이노 클링크 미 국방부 동아시아 담당 부차관보는 "미국은 군사 옵션을 철회한 적이 없다"며 "북한이 공격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면 강한 응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5일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불쾌감을 자제할 수 없다면서 "늙다리의 망령"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8주기인 오는 17일을 전후로 더 강경한 메시지로 기조를 바꿀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정은 위원장이 12월 하순께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전격 소집한 가운데, 북한이 언론보도를 통해 사전 정지작업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인내하겠다는 연말 시한이 얼마 남지 않으면서 전원회의를 앞뒤로 대미정책 강경노선이나 '새로운 길' 등에 대한 윤곽이 더 뚜렷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러한 가운데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미국 측 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내정자가 이달 중순께 방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비건 대표는 그동안 방한했을 때마다 평양이나 판문점 등에서 북측과 접촉하며 북미 대화 실무를 이끌어왔다. 비건 대표의 방한이 막판 반전을 이룰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