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북한이 중대한 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히면서 전날 이뤄진 한미 정상 통화 내용에 시선이 쏠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이 중대한 시험을 실시했다고 밝힌 당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먼저 정상 간 통화를 요청했다는 점과, 양측이 "최근 한반도 상황이 엄중하다는 데 인식을 공유했다"라는 점은 사전에 양 정상이 북한의 이 같은 움직임을 공유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북한의 발표 직후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8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정상 간 통화 내용은 밝힐 수 없다"면서도 "통화 내용에 대해 지금 단계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과 오전 11시부터 30분 동안 정상 통화를 진행했다. 외교 관례에 따르면, 보통 청와대는 정상 통화에서 누가 먼저 통화를 요청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이례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통화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최근 한반도 상황이 엄중하다는 데 인식을 공유하고,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조기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대화 모멘텀이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또 당분간 한미 정상 간 협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통화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한반도 상황이 엄중하다는 한미 정상의 공통 인식은 최근 북한이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새로운 움직임 포착된 것과 연관된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CNN은 지난 5일(현지시각) "북한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전에 없던 움직임이 보인다"며 "북한이 인공위성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 올리기 위한 엔진 연소 실험을 재개하는 것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조선중앙통신은 8일 오전 "2019년 12월7일 오후 서해위성발사장에서는 대단히 중대한 시험이 진행됐다"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과학원은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이번 시험의 성공적 결과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 보고했다"고 전했다.
북한이 서해 위성 발사장이라고 부르는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은 평안북도 철산군에 위치한 곳으로 북한 ICBM 연구개발의 요람이자, 엔진을 개발하는 곳이다. 북한은 이곳에서 여러 차례 ICBM 발사체 시험을 진행했다.
통신은 "이번에 진행한 중대한 시험의 결과는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또 한번 변화시키는 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발사체 발사가 탐지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ICBM급 미사일의 고체연료 엔진 시험을 감행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은 최근 미사일 추진체를 액체연료에서 고체연료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만일 고체연료 ICBM급 미사일의 경우, ICBM 실험 재개 의지를 피력하는 강력한 대미 압박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미국 측도 이를 사전에 인지하고 문 대통령에게 한반도 상황의 엄중함을 알린 것 아니겠느냐는 관측이다.
'새로운 길'을 언급해 온 북한이 ICBM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은 다시 2017년 이전 상황으로의 회귀를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러한 움직임을 멈추기 위한 한미 간의 실질적 방안을 논의했을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는 북한의 발표 이후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등 관계 부처와 긴밀히 논의하며 시험 의도와 성격을 정밀 분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낼 뿐, 공식 입장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도 열리지 않았다.
북한이 공언한 '중대한 시험'의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입장을 내기엔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국방부 관계자는 "한미는 긴밀한 공조 하에 북한 동창리를 비롯한 주요 지역의 활동들에 대해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아울러 한미 정상 간 통화에서 이런 북한의 동향에 대해 세부적인 단계까지 논의했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답보 상태에 놓인 북미 실무협상을 움직이기 위한 큰 차원에서의 아이디어들이 오고 갔을 것이란 추정이다.
여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조바심을 보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에게 아이디어들을 묻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정부 소식통은 "구체적으로까지 아니어도 정보 사안에 대해 북한의 동향이 잡혀서 거기에 대해 논의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