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성격에 따라 대화의 소재도 다르고 그에 반응하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을 만납니다. 모임을 주도하는 이, 주도하진 않지만 모임에는 절대 빠지지 않는 이, 다른 얘기는 듣지 않고 주야장천 자기 얘기만 하는 이, 조용히 듣다가 어쩌다 내뱉는 한 마디로 좌중을 뒤엎는 이 등 사람들 얘기 듣고 관찰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어떤 모임은 구성원 모두가 하나같이 전문가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아는 것도 많은 지 세상 어떤 문제든 모르는 게 없고 해답까지 척척입니다. 또 다른 모임은 그저 수컷들의 수다방입니다. 밥 먹고 차 마시는 두 시간 동안 되지도 않는 농담과 시시껄렁한 얘기만 주고받다가 남는 것 없이 헤어집니다. 나는 주로 듣는 쪽이므로 모임에 따라 강의를 듣는 수강생이 됐다가 그저 한바탕 쇼를 보는 관객이 되기도 합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 아름다운 결을 지닌 사람도 만납니다. 허름해도 고귀하게 빛을 발하는 깨끗한 얼굴을 한 사람, 반듯하고 건강한 자기 세계를 구축한 사람, 단단한 껍질로 싸여 있지만 조그만 자극에도 ‘잎새에 이는 바람’을 맞은 듯 괴로워하는 사람 같은.
사회적 가면을 쓴 무리 안에서 소수지만 그런 귀한 존재들을 감별해낼 줄 안다는 자만감으로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의 빈틈을 우연히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세련된 몸짓에서 어색함을 감추려는 몸짓을 읽었을 때, 냉소적인 겉모습 뒤에 뜨겁고 서투른 열정을 보았을 때, 거칠 것 없는 당당함이 사실은 겸손함을 가리는 위악(僞惡)임을 알았을 때. 사람을 끄는 힘은 상대의 매력과 장점 때문이지만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저런 빈틈을 통해서입니다.
빈틈을 이해하면서 가까워진 이들, 아름다운 결을 가진 사람들, 수줍어서 크게 인사하지 못하는 이들, 소심해서 예의 없어 보이는 이들을 알아보고 나와 비슷한 약점을 가진 그들에게 이해의 눈길을 보낼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내가 세심하게 살피면서 다정한 시선을 보내는 대상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내가 상상하는 범주 너머의 사람과 세상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엔 속물 취급했고 폄하했으며 경멸하기도 했습니다. 그들 역시 여린 속내를 지녔을 것이고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갈 텐데 이에 대해선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예의 바른 웃음을 꾸며내면서 내심 깔봤던 사람들에게도 이제부터 눈길을 주려고 합니다. 알아보고 이해하고 경우에 따라선 지켜줘야 한다고도 생각하게 됐습니다. 나보다 예민하고 날이 서 있는 이도 있을 것이고 나보다 더 좋은 사람임이 틀림없는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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