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자식이 넷입니다. 전처와 사이에 난 아이 둘과 재혼한 현재 아내가 데리고 온 아이 하나, 그리고 그와의 사이에 아이가 하나 생겨 모두 넷이 됐습니다. 결국 친구 입장에선 내 아이 둘과 아내의 아이 하나, 그리고 ‘우리’ 아이가 하나인 셈입니다. 그렇지만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2018년 칸영화제 수상작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한집에 모여 살면서 노인연금과 도둑질로 생계를 이어가다가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요즘은 마음 맞는 친구끼리 또는 연인끼리 혈연도 아니고 혼인관계도 맺지 않았지만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을 위협하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압도적 꼴찌입니다. 사망자가 출생아보다 많아지는 이른바 ‘데드크로스’는 이미 시작됐고 내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섭니다. 낮은 출산율과 기대수명 증가에 따른 고령화는 세계적으로 동일한 현상이지만 우리는 그 속도가 유독 빨라 전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도 곧 닥칠 미래이므로.
오랫동안 가족과 고령화 문제를 연구해 온 독일 저널리스트 프랑크 쉬르마허는 저서 《가족, 부활이냐 몰락이냐》에서 위기의 순간에 가장 힘을 발휘하는 것이 가족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혈연이나 혼인을 통해 구성할 수 있는 가족의 법적 정의는 이제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각자의 이해와 필요에 기반한 자생적인 만남과 관계를 통해 새로운 개념의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고 이런 추세는 확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처럼 서로를 걱정하고, 꼭 안아주고, 상처를 보듬어주고, 같이 식사하고, 함께 바다로 놀러가는 장면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진짜 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습입니다. 국가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허점을 채울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어쩌면 ‘가족’의 기능을 수행하는 다양한 형태의 ‘생활공동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민법 제779조 ①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②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돼 있는 ‘가족의 범위’는 새로 정의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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