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모레비(木漏れ日). 한 단어처럼 쓰는 간단한 이 일본말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복잡해집니다.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스치는 햇살’. 이 말은 최근 개봉한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인 일본 ‘국민 배우’ 야쿠쇼 고지가 영화 홍보차 한국을 방문했다는 뉴스를 보고 지난 주말 부랴부랴 영화를 찾아 봤습니다.
나이를 밝히지 않은 주인공은 이제 갓 노년기에 들어선 점잖은 남자로 도쿄 시부야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게 직업입니다. 그는 매일 아침 창문 너머로 알람처럼 들리는 빗자루 소리에 잠을 깹니다. 키우는 화분에 물을 주고 작업복을 입고 집을 나섭니다.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하나 뽑고 청소도구를 실은 용달차에 올라 카세트테이프를 고릅니다. 선택한 올드팝이 그날 출근길의 BGM입니다. 사람들이 머물다 간 공중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근처 공원 벤치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나무들 사이로 비집고 쏟아지는 햇빛을 필름 카메라에 담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입니다. 퇴근 후 동네 목욕탕에서 몸을 씻은 후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와 헌책방에서 산 소설을 읽다 잠이 듭니다.
2017년 영화 《패터슨》의 주인공인 시내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이 겹쳐 보입니다. 패터슨도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처럼 매일 같은 시간에 정해진 루틴을 규칙적으로 정확하게 지킵니다. 히라야마는 예상하지 못한 타인의 방문으로 잠시 리듬이 깨지지만 이내 본래의 일상을 되찾습니다.
영화는 기승전결의 연결고리도 희미하고 클라이맥스도 없는, 어쩌면 우리 일상과 너무 비슷해 영화적 전개와는 동떨어진 주인공의 하루를 두 시간 동안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그런데도 주인공의 삶은 지루하지 않고 경건해 보입니다. 심지어 제목처럼 ‘퍼펙트’하게까지 느껴집니다.
히라야마의 하루는 무한루프처럼 매일매일 반복해서 이어집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똑 같은 매일이 아닙니다.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다르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이고 특히 카메라에 담는 코모레비가 다릅니다. 어제와 같은, 지나간 날의 햇살이 아니라 오늘, 지금 햇살을 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똑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하루를 살지만 삶에 깃들어 있는 작은 차이를 느끼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 작고 소중한 경험을 존중하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줄도 압니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그것이 주는 행복감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영화에 “그림자가 겹치는 순간 더 진해진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그저 일상의 소소한 경험에서 얻은 작은 즐거움을 겹쳐 사는 날들이 더해지면 그게 바로 영화가 얘기하는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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