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4.12.29(일)
[신형범의 千글자]...누구도 특별하지 않다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니까 아버지는 병원을 자주 다니십니다. 대학병원의 유명한 의사선생님을 소개받아 힘들게 진료날짜를 잡게 됐다, 알고 보니 같은 고향이고 지인의 누구더라, 그래서 멀리 있는 수술 날짜도 당길 수 있었다 등 당신이 받(았다고 생각하는)은 ‘특혜’를 자랑하십니다.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시면 그 리조트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지인의 누구이며 아는 사람이어서 더 좋은 조건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고(생각하시는) 무용담을 늘어놓습니다. 아버지는 평생을 특별하게 아니,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사시는 분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본인은 행복감을 느끼니 뭐라고 탓할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아버지 같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한국사회는 유독 학벌 직업 소득 그리고 사는 곳까지 계급으로 나눠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 같이 평등하게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 개천에서 용이 나와야 하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나만(혹은 내 자식만) 성공하라는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이런 조건에 따라 나는 당연히 남과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바로 ‘권리의식’입니다.

권리의식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어떤 이유로든 집단에서 우월하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학교를 나와서, 돈이 많아서, 높은 지위를 갖고 있으니까 등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합니다. 극도로 강화된 권리의식은 결국 갑질이나 혐오범죄 같은 공격성으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국은 국민소득은 높지만 행복지수는 상대적으로 낮다고 진단합니다. 절대빈곤 국가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은 수준입니다. ‘왜 한국인은 불행한가’에 대한 답으로 지나친 집단주의,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억압하는 문화, 과시하고 비교하는 분위기 등 다양한 분석을 내놓습니다. 여기에 하나 보태자면 보이지 않는 계급에서 비롯된 근거 없는 권리의식도 주요한 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남을 짓밟으려다 보면 내가 짓밟힐 확률도 높아지니까 모두가 불행할 수밖에요.

이와 비교되는 북유럽 사람들 행동의 바탕이 되는 ‘얀테라겐(Jantelagen)’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얀테는 1933년 노르웨이 작가 악셀 산데모사가 발표한 소설 《도망자는 자신의 자취를 가로지른다》에 나오는 가상의 마을입니다. 이 마을 주민들이 지켜야 할 10가지 행동규범이 바로 얀테라겐인데 진짜 유래는 이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구전돼 온 교훈이라고 합니다.

얀테라겐의 핵심은 ‘당신이 남들보다 특별하거나 낫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공동체 의식과 겸손입니다. 예컨대 북유럽에서는 부를 과시하는 언행을 금기시합니다. 불필요한 과시가 집단 내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통제하고 개성을 억압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북유럽의 행복도를 높여준 뿌리 깊은 가치관이라는 점에선 이견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식을 키울 때부터 아이를 향한 사랑과 관심을 ‘너는 특별한 아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만약 ‘특별한 사람은 없어. 너도 마찬가지야’라고 한다면 부모 자격이 없다고 비난 받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 ‘넌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각자의 고유성을 인정하자는 겁니다. 너만 특별한 존재라는 걸 강조할 게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존중 받아야 한다는 걸 가르쳐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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