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이 뚜렷(했었던)한 우리나라에서 ‘여름’이라고 하면 보통 6~8월 3개월 정도를 말합니다. 월별로 보면 봄(3~5월) 여름(6~8월) 가을(9~11월) 겨울(12~이듬해 2월) 등 각 계절별로 3개월씩 지속된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상학적으로 ‘여름’은 일 평균기온이 섭씨 20도 이상 올라가서 다시 내려가지 않은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를 말합니다. 과거 30년(1912~1940) 평균 여름은 98일인데 비해 현재 30년(1991~2020년) 평균을 보면 118일로 20일이 늘었습니다. 여름 시작일과 종료일도 6.11~9.16이었다가 최근 10년 평균을 보면 5.25~9.28로 5월과 9월은 이미 여름에 해당하는 기온입니다.
또 우리나라의 여름은 다시 장마와 폭염, 두 구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6월 중순 제주부터 남부, 중부지방으로 장마가 시작돼 7월 중순까지 일 년 중 가장 많은 비가 내립니다. 장마가 끝나는 7월 하순부터 8월 말까지는 극심한 폭염이 이어집니다. 이게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여름입니다.
그런데 곳곳에서 이상기온이 나타나면서 5월부터 한여름 폭염이 시작되는가 하면 장마의 의미도 바뀌고 있습니다. 전통적 장마기간보다 최근에는 8월에 비가 더 많이 내리는 경우가 잦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상청은 재작년부터 장마 대신 6~8월을 통째로 우기(雨期)로 표현하는 등 한반도의 여름철 강수패턴을 설명할 용어를 찾고 있습니다.
어쨌든 기후변화로 예상 가능했던 ‘전통적 여름’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상고온과 극단적 폭염, 폭우가 잦은 ‘혹독한 여름’이 길어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해 기상청은 계절별 구간을 조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계절의 길이를 조정하는 것은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후 117년 만의 첫 시도입니다.
여름이 길어진다는 것은 다른 계절이 짧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존 여름철에 맞춰진 방재, 보건, 복지정책도 날짜와 기간을 바꿔야 한다는 뜻입니다. 5월의 불볕더위, 9월 찜통더위 등 실제로 우리가 겪는 여름은 인식상 알고 있는 여름과 달라서 ‘여름철’을 현실화할 필요성이 커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지금까지의 사계절 패턴이 붕괴된다는 것을 공식화하는 중요한 결정입니다.
기상청은 앞으로 한반도의 여름은 최소 110일에서 최대 170일이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일 년 중 여름이 4~6개월을 차지하게 되는 셈입니다. 습도가 높아서 비슷한 기온의 동남아보다 훨씬 견디기 힘든 우리나라의 여름은 점점 살기 고달파지는 계절이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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