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닭을 먹었습니다. 복날이라고 해서 특별히 챙겨 먹는 일 따윈 하지 않는 편이라 초.중.말복을 그냥 넘겼는데 이번 주 들어 삼계탕, 닭도리탕, 프라이드치킨을 계속 먹었습니다. 그제 저녁에도 식사 후 간단하게 입가심한다며 지인들과 ‘치맥’을 했는데 어제는 선배가 몸보신하자고 해서 또 녹두삼계탕을 먹었습니다. 이쯤 되면 밥보다 닭을 더 많이 먹는 것 같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 보양식의 대표는 보신탕이었습니다. 올해 초 ‘개 도살 금지법’이 통과된 이유도 있지만 여러 이유로 보신탕을 먹는 사람과 식당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반려동물 키우는 인구가 1500만이고 아기 유모차보다 강아지 유모차가 더 많이 팔리는 현실에선 3년의 유예기간을 채우기도 전에 보신탕은 금방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대신 먹는 음식이 삼계탕입니다. ‘일인일닭’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한국인의 치킨 사랑은 유명한데 매년 10억 마리 이상 식용으로 도살됩니다. 하루에 3백만 마리 꼴입니다. 복날이 있는 여름에는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다고 합니다.
‘보양’은 양기를 보전한다는 뜻입니다. 기름에 튀겨서 콜라나 맥주랑 같이 먹는 치킨이 건강에 좋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 삼계탕은 보양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때 보신탕도 그렇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개농장의 참혹한 현실이 밝혀지면서 그 말은 무색해졌습니다. ‘동물권’에 대한 윤리적인 고려는 다음 문제고 그냥 너무 더러웠습니다. 이렇게 먹는 보신탕이 과연 건강에 좋을까요.
국내 닭농장의 현실도 개농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삼계탕용 닭은 성장을 빠르게 하기 위해 육계와 산란계를 고배해 만든 잡종입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종이고 하림, 마니커 같은 대기업이 생산하는데 규제도 애매합니다. 한 동물단체가 취재했는데 상황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우선 농장의 조명이 24시간 켜져 있습니다. 밝을 때 먹이를 먹는 닭의 습성을 이용해 빨리 살찌우기 위해서입니다. 움직일 틈 없이 빽빽하게 서 있어서 모이통까지 분변이 가득했습니다.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를 맞으며 한달 남짓 버티다가 결국 도살됩니다. 그런 닭의 가슴과 다리, 날개를 먹는 게 과연 내 몸과 마음에 도움이 될까요.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돼 밥상으로 올라오는 음식의 진실을 알면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더운 여름에 한번 개고기, 닭고기를 먹는 게 보신, 보양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024년 한국인은 쌀보다 육류 소비량이 더 많습니다. 매일 고기를 먹으면서 복날이라고 또 고기를 먹는 겁니다. 오히려 그날만큼은 안 먹는 게 건강에 더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실컷 먹고 나서 딴소리 하려니까 양심에 좀 걸리긴 하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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