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과 달리 부고(訃告)는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날아옵니다. 그러니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습니다. 나 정도 나이가 되면 부고는 대개 부모상입니다. 예전에 비해 고인의 연령대가 많이 올라간 걸 느낍니다. 보통 80대 후반에서 90대 중반, 많진 않지만 백세를 넘기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최근에도 한 달 동안 장례식장에 너댓 번은 간 것 같습니다. 도착하면 우선 방명록에 서명한 다음 고인께 예를 표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국밥 한 그릇 먹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나 지인들과 안부를 묻고 수다를 떨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시간을 보냈다 싶으면 다시 한번 유족을 애도하고 돌아옵니다. 형식적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애도는 쪼그라들고 예의와 인사만 남은 장례식장 풍경이 언젠부턴가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무수한 죽음과 마주쳤습니다. 우리 곁에 늘 죽음이 있다는 걸 알지만 망각하고 살아갑니다. 어제는 대학 동창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지 40년 가까이 됐지만 모임에서 두 번 본 게 전부인 친구입니다. 별것도 아닌 얘기에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뜨고 진짜냐,고 되묻던 동그란 그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자식 둘 중 하나를 먼저 보낸 아픔을 겪었다는 얘기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애도란 죽은 자의 삶을 충분히 이야기하는 행위입니다. 빈소에서 나누는 고인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여전히 그와 함께 살아갑니다. 그런 걸 보면 사람은 죽어서 이야기로 남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우리가 죽어도 죽지 않도록, 또 망각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줍니다.
우리 역시 언젠가 이야기로 남아서 인생이라는 비단에 수놓은 크고 작은 문양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장례가 죽은 이의 삶을 말하지 않는 부산하고 공허한 시간에서 그 영혼의 빛으로 인생을 수놓는 비단을 짜는 시간이면 좋겠습니다. 죽은 이를 위해,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우리 자신을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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