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4.12.26(목)
[신형범의 千글자]...내가 일기를 쓰는 건
공휴일을 빼고 매일 아침 쓰는 이 꼭지에 굳이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천 글자 일기’가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짧으면 생각과 감정을 충분히 담을 수 없고 긴 글은 안 읽는 세태임을 감안해 생각해낸 분량이 ‘천 글자’입니다(분량을 정확히 맞추진 못하고 대개 800자에서 1300자 정도 되는 글이 많습니다).

또 일기는 예전에는 자신의 은밀한 사연을 고백하는 수단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누구나 자신의 일상을 소셜미디어에 스스럼없이 공개하면서부터 일기는 더 이상 비밀스러운 내면을 담는 무언가로 여기지 않게 됐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나한테는 감추고 싶은 내면 같은 건 있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비슷한 성격의 다른 사람들의 소셜미디어도 참고가 됐습니다. 시대, 성별, 나이가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봐도 나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데서 오는 위안도 글을 쓰는 데 주저함을 덜어줍니다. 기분 나쁜 일도 나만 겪는 특별한 불행이 아니라 사는 게 다 그렇지, 하는 동질감과 연대감도 힘이 됩니다.

살기 위한 분투의 기록, 혼란한 마음 상태, 개인적 욕망 등을 눈치 보지 않고 적었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겪은 불편한 일들도 나만의 언어로 살려냈으며 일기를 쓰다 보니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가는 법도 깨우친 것 같습니다.

일부러 자리를 만들어 얘기하기도 좀 뭣하고 또 그럴 필요도 없는 삶의 솔직한 모습을 고스란히 폭로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어떤 특정한 장르라는 틀에 가두기 전의 원초적인 날것이라는 점에서 일기는 단순한 하루의 기록이 아니라 장르가 규정되지 않은 무정형의 글 같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 일기는 시간을 다르게 대하는 일입니다. 쓰지 않으면(기억하지 않으면 또는 말하지 않으면) 시간은 물에 젖어 들러붙은 책처럼 됩니다. 쓴다는 건 뭉쳐져 떡처럼 덩어리가 된 시간을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떼어내 구겨지고 얼룩진 종이 위에 적힌 흔적들을 다시 읽는 일입니다. 그래서 일기를 쓰다 보면 시간에 대한 감각이 달라집니다. 시간 뿐이 아닙니다. 모든 생명은 특이하며 순간순간이 유일무이하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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