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경상도 지역에서 ‘히야’는 ‘형’을 뜻하는 말입니다. ‘행님’도 있지만 ‘행님’은 격식을 좀 갖추거나 별로 가깝지 않을 때 부르는 말이고 친형이나 가까운 사이엔 ‘히야’라고 합니다. 특이하게 여자들도 이 말을 쓰는데 나이 많은 손위 여자를 ‘언니’라 하지 않고 ‘히야’라고 부릅니다.
재밌는 건 일부 지역에선 남자도 손위 여자형제를 부를 때 ‘언니’라고 부른다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경상도 지역에서는 형과 언니를 성별 구분 없이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오빠’와 ‘누나’를 사용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대학 다닐 때까지 여학생들은 남자 선배를 ‘형’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빠’ 또는 ‘선배’라고 부르는 경우는 못 봤습니다. 지금도 여자 동창들은 남자선배를 ‘형’이라고 부르고 우리도 여전히 그게 자연스럽습니다. 나보다 한참 위 세대인 가수 양희은도 개인적으로 친한 송창식, 윤형주 같은 사람들을 지금도 ‘창식이 형, 형주 형’이라고 부르는 걸 방송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의 어원을 굳이 따지자면 ‘학형(學兄)’의 줄임말이라고도 하고 운동권 문화에서 비롯됐다고도 합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학생운동이 쇠퇴하면서 대학가의 ‘형’은 어느 순간 ‘오빠’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직장생활 10년쯤 됐을 때 여자 신입사원들이 남자선배를 ‘오빠’라고 부르는 걸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오빠’는 진화를 거듭해서 진짜 오빠는 물론 애인, 남편, 심지어 유흥주점의 모든 남자고객은 ‘오빠’가 됐을 정도로 지칭하는 대상이 다양해졌습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K팝, K드라마의 인기 덕분에 ‘오빠’는 전 세계로 알려진 유명한 한국말 중 하나가 됐습니다. 급기야 영어 표기 ‘Oppa’는 옥스퍼드사전에 등재됐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전 세계가 알고, 또 쓰는 ‘오빠’인데 유독 사용하지 못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와 같은 말을 쓰는 북한입니다. ‘오빠’를 사용하다 적발되면 감옥에 갑니다. 남한의 천박한 자본주의 문화가 유입되는 걸 막는다며 3~4년 전부터 오빠라는 말을 쓰면 처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혈육이 아닌 청춘남녀 사이에 오빠라고 부르는 행위는 ‘괴뢰식’이라고 명시하고 심지어 친오빠도 ‘오라버니’로만 부르게 합니다.
어떤 나라의 대통령 부인이 지인(?)과 나눈 SNS 대화에서 ‘우리 오빠’라고 썼다는데 그 오빠가 남편인지 친오빠인지를 놓고 해석이 분분했던 모양입니다. 어제는 또 한 여성 정치인이 남편을 ‘배 나온 오빠’라고 해 정치권이 시끄럽습니다. 혈연관계의 오라버니부터 남성 지인, 애인, 남편까지 ‘오빠’라는 말의 쓰임새가 너무 넓다 보니까 벌어진 일 같습니다. 이 기회에 우리나라도 ‘오빠’의 의미와 사용범위를 ‘법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어길 땐 구속시켜버려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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