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요즘 보기 힘든 여관 간판입니다. 최고급 호텔은 아니더라도 비즈니스호텔, 부띠크호텔, 모텔 같은 ‘~텔’로 끝나는 현대화된 숙박시설은 익숙하지만 여관, 여인숙 같은 전통 숙박업소는 이제 옛날 영화나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구한 말, 정부가 운영하던 역원제가 폐지되면서 개항장(開港場)을 중심으로 근대적 숙박시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1888년 일본의 조계지 인천에 대불(大佛)호텔, 경성 최초의 여관으로 알려진 시천(市川)여관, 1897년 수표다리 근처에 위치한 한성(漢城)여관, 같은 해 일본인 거류지인 남산 근처에 세워진 파성관(巴城館)호텔 등이 대표적입니다.
1899년 경인선 철도가 부설되어 인천에서 경성까지 바로 이동이 가능해지자 1900년을 전후해서 서대문역과 정동 근처에 서양식 호텔이 들어섰습니다. 1901년 프랑스인 마르탱이 덕수궁 대한문 앞에 팔레호텔(Hotel du Palais)을 세웠고 경인선 종착지인 서대문에 스테이션호텔(Station Hotel)이 생겼습니다. 1902년에는 손탁(Marie Antoinette Sontag)이 고종에게 하사 받은 양관을 서양풍으로 장식해 손탁호텔(Sontag Hotel)을 열었습니다.
그 후 1905년 경부선, 1906년 경의선에 이어 1911년에는 만주까지 운행이 가능해지고 1914년 경원선이 개통되면서 관광객과 여행객이 증가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1912년 부산철도호텔을 시작으로 신의주, 경성, 금강산, 평양 등 주요 철도역과 관광지를 중심으로 철도호텔을 설립했습니다.
1914년에는 현재 서울시청 앞 환구단 자리에 독일인 건축가 게오르그 데 랄란데(George de Lalande)가 설계한 조선철도호텔이 건립됐습니다. 지하 1층, 지상 4층에 객실 52개로 당시 조선에서 가장 큰 규모입니다. 환구단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 1897년 고종이 황제에 즉위하면서 예법에 맞춰 건설했는데 일제에 의해 철거되고 호텔이 들어선 것입니다.
개항과 함께 국내외를 오가는 사람이 증가하면서 초기 여관은 숙식을 모두 제공하는 형태였습니다. 물론 조선 후기 장이 서는 한양과 지방 고을에는 상인들의 숙박시설로 주막, 여각, 객주 등이 있었으나 전문 숙박업소가 아니고 판매자와 구매자 간 중계거래와 위탁판매를 하다가 차츰 규모가 커지면서 창고업, 금융업, 숙박업을 겸하게 됐습니다. 숙박만 제공하는 여관이나 여인숙의 출현은 1950년대 후반부터로 보는 게 일반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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