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의 김천시가 자체적으로 국내 여행에 관한 실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김천’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냐는 질문에 MZ들은 김천의 특산물인 포도나 유명 사찰인 직지사(直指寺) 대신 ‘김밥’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습니다. 젊은이들에게 ‘김천’은 프렌차이즈 음식점 ‘김밥천국’의 줄임말로 훨씬 익숙하고 입에도 잘 붙기 때문입니다.
의외의 결과에 당황한 김천시는 ‘원영식 사고 – 일상의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초월적 사고’를 떠올렸고 이왕 이렇게 된 마당에 김밥축제를 한번 열어보자고 방침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난 달 26, 27일 이틀 동안 김 한 장 나지 않는 내륙도시 김천에서 김밥축제가 열리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 당초 예상보다 사람들이 5배 이상 몰려 성황을 이뤘다는 후문입니다.
그러자 김과 쌀을 국내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전라남도가 발끈했습니다. 지난 주말 3일 동안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2024 전남 세계 김밥페스티발’을 열었습니다. 김밥의 재료로 사용하는 전남의 풍부한 식재료를 소개하는 게 ‘메인 테마’라고 했습니다.
라면이 주인공인 도시도 있습니다. 경북 구미에는 국내에서 가장 큰 라면 생산공장인 농심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착안해 구미시는 ‘구미 라면축제’를 기획하고 지난 주 1일부터 3일 간 라면축제를 열었습니다. 올해로 3회째인데 공장에서 갓 튀겨 나온 라면을 구입하거나 이색 라면요리도 맛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원주는 만두입니다. 원주에서 유명한 도래미시장에는 ‘만두골목’으로 불리는 지역이 있습니다. 당초 김치만두를 파는 집들이 몰려 있어 유명해졌는데 지난 달 25일~27일 ‘2024 원주 만두축제’가 열렸습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이색 축제들이 열리고 또 반응이 이어지자 온라인에는 갖가지 기발한 축제를 추천하는 글들이 달렸습니다. 외계인축제를 개최할 경기도 화성, 고양은 고양이축제, 고성은 샤우팅, 성남은 분노, 곡성은 오컬트, 세종은 받아쓰기 축제 같은 해학 넘치는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비판적인 의견도 있습니다. 단순한 말장난일 뿐 일시적인 관심을 넘어 진정한 이벤트로 자리잡기 위해선 차별화된 컨텐츠와 지역의 문화특성과 어울리는 스토리텔링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겁니다. 반짝 흥행에 성공했다지만 지역의 존재감을 특산물도 명소도 아닌 이름으로 규정해야 하는 현실이 한편으론 서글픕니다. 지역적 특색은 사라지고 이름만 남은 지자체 축제가 지속 가능할지도 의문입니다. 이러다 경남 진주의 주얼리(보석), 충북 청주는 청주(술), 대전은 격투기, 공주는 프린세스 같은 축제가 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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