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딸은 남자친구와 만남 1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마음이 들떴습니다. 선물을 교환하고 특별한 이벤트까지 기대하는 눈치였습니다. 결혼기념일도 아니고 그깟 만난지 1년 되는 날인데 유난 떨지 말라고 입 밖으로 말하는 순간 바로 ‘꼰대 아빠’가 될 것 같아서 꾹 참았습니다. 만나고 헤어지는 게 새털처럼 가벼운 세태이다 보니 100일만 지나도 스스로를 대견해 하는 젊은이들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닙니다.
여자들은 잘생기고 키 크고 실력 있는 남자를 좋아합니다. 당연합니다. 이건 여자들이 후손에게 우수한 유전자를 전달하고 싶은 본능적인 욕망입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수컷 공작이 화려한 날개를 활짝 펴서 암컷에게 자랑하는 건 자기 유전자가 그만큼 우수하다는 걸 과시하는 행동입니다. ‘나는 이만큼 건강해. 내 유전자는 이렇게 탁월하다니까’라고 광고하는 겁니다. 공작처럼 유난스럽진 않아도 모든 수컷 동물들은 다 비슷합니다.
인간은 어떤가요. 동물보다는 훨씬 더 복잡합니다. 드러나는 외형적인 조건만 따지지 않습니다. 친절하고 이해심은 넓은지, 성격은 원만하며 타인을 배려하고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지가 있는지, 자신과 취향은 비슷한지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조건들을 비교합니다.
사람은 화려한 날개나 날카로운 발톱, 힘센 근육은 없지만 대신 다양한 표정으로 말하고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또 남을 웃기고 스스로 웃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웃음은 오래 살아남아서 많은 자손을 남기는 데 상당히 유리한 도구인 것 같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유머감각과 웃기고 웃는 능력은 인간에게 ‘자연선택’적으로 다듬어진 생물학적 적응인 셈입니다.
인간은 다양한 수준과 층위에서 짝을 짓고 배우자를 선택합니다. 배우자가 아니더라도 친구를 사귀고 동아리에 가입하고 직원을 뽑고 비즈니스 파트너를 정합니다. 이 때도 유머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친절한 동료와 명랑한 조직 분위기는 자신이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이 얼마나 많은지 알려 줍니다. 또 자신이 그 집단에 남기 위해서는 얼마나 기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찾게 됩니다.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 그렇게 잘생긴 남자를 ‘밝히던’ 딸이 자기 입으로 ‘못생긴’ 남자를 친구로 선택한 걸 보면 ‘잘생김’ 외에 다른 특별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딸이 검토한 많은 조건 가운데 ‘유머’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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