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서평(書評)이라는 걸 쓴 게 인연이 되어 가끔 ‘눈팅’ 하는 출판사가 있습니다. 출판사가 운영하는 소셜미디어에서 느껴지는 편집자의 열정과 간간이 구사하는 유머(솔직히 빵터지는 건 아닙니다)와 재치는 책의 종류나 개인적 선호와 상관없이 눈길을 끌고 손가락을 움직여 클릭하게 만듭니다.
신간 《그만둘 수 없는 마음》 가제본 이벤트에 참여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작가 김가지는 인천의 한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전공과는 무관한 청소일을 10년째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청소일만 하는 게 아닙니다. 이미 책을 6권이나 출간한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강연자, 선생님 등 그야말로 ‘N잡러’입니다. 엄마가 “가지가지 한다”고 핀잔하던 데서 힌트를 얻어 필명도 아예 김가지로 바꿨습니다.
택배로 배달된 책을 받아 본 순간 솔직히 좀 당황했습니다. ‘책’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문자텍스트가 익숙한 세대인지라 글과 그림으로 컨텐츠를 구성한 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게 뭐 어떻습니까. 마르셀 뒤샹이 화장실에 있는 남성용 소변기를 ‘작품’으로 출품한 이래로 지금은 바나나 한 개를 테이프로 벽에 붙인(마우리치오 카텔란 2019년) ‘개념미술’이 경매시장에 수십억 원으로 나오는 시대 아닙니까.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졌듯 컨텐츠 간의 경계도 낮아지고 허물어졌습니다. 사실적인 재현이나 아름다움의 구현 같은 건 이제 더 이상 예술의 목표가 아닌 세상이 됐습니다. 예술창작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대체됐습니다.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텍스트만, 혹은 그림만 고집한다면 지금 쏟아져 나오는 충격적인 작품들을 이해하고 소화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예술과 비예술을 구분하는 게 무의미해지고 전문가라고 해서 보통사람보다 안목이 더 낫다는 확신도 예전만큼 근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만둘 수 없는 마음》 김가지 작가는 돈 때문에 ‘알바’와 인턴을 시작했지만 돈을 ‘쌓아’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자유’를 준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습니다.
간간이 책의 본문에 등장하는 ‘청년 도배사’ 배윤슬 씨가 최근 칼럼에서 ‘도배사들이 물건값을 따질 때 자주 하는 말이 “그 돈이면 내 하루 일당이야” “내 일당보다 많네” “그거 사려면 사흘은 꼬박 일해야 해”’라고 썼던 게 ‘청소일 하는’ 김가지의 마음과 겹쳐 보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 몸과 머리를 움직여 고생하며 돈 버는 건 마찬가지지만 월급 받을 땐 그 물건을 살 여력이 월급이 기준이 되어 조금은 추상적이지만 청소나 도배 같은 일들은 하루벌이가 기준이 되어 훨씬 구체적입니다. ‘이걸 사기 위해 며칠을 일해야 하는지’ ‘힘들게 일해 번 돈을 그렇게 쓰는 게 옳은지’ 더 직관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책에는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하지만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지 잊지 말라는 충고가 숨겨져 있습니다. 작가는 직접 얘기하지 않아도 돈으로 느끼는 행복은 번 돈을 쓰고 싶은 곳에 기꺼이 쓰고, 필요가 적은 곳에는 아끼면서 돈에 끌려가지 않고 돈의 주인이 되어 주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다음 에피소드에 펼쳐질 작가의 속이 점점 궁금해지는 ‘그만둘 수 없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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