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는 신드롬급 인기로 유행어까지 만들어질 정도입니다.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요리사끼리 숨 막히는 경연은 긴장감과 흥미를 배가시켰습니다. 동시에 맛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실제 가능한지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맛은 보통 혀로 느낍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단맛 짠맛 신맛 쓴맛 이렇게 네 가지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자들은 ‘감칠맛’이라는 걸 새로 찾아내 지금은 맛을 다섯 종류로 분류하는 게 정설로 통합니다. 참고로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입니다. 예로 고추에 들어 있는 화합물 캡사이신은 온도수용체와 결합해 뜨거운 통증을 일으킵니다. 이런 통증은 혀 뿐 아니라 눈이나 몸의 다른 부위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단맛은 포도당을 감지하는데 포도당은 몸의 에너지원입니다. 세포에 전달된 포도당은 호흡을 통해 ATP(Adenosine triphosphate 아데노신 3인산)로 바뀝니다. 사람은 매일 포도당 640g 정도를 먹어야 하고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짠맛은 나트륨이온 맛입니다. 나트륨은 삼투압을 조절하고 신경전기신호 발생에 필요합니다. 뇌와 신경세포들 사이의 소통은 전기신호로 이뤄집니다. 뇌의 무게는 몸무게의 2%에 불과하지만 전체 에너지의 20%나 사용하는데 뇌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절반 정도가 나트륨이온을 세포 밖으로 보내는 데 쓰입니다. 나트륨이 없으면 뇌의 활동도 멈춥니다.
신맛은 물에 녹아 있는 수소이온의 맛입니다. 인간이 먹는 발효음식은 부패한 음식과 달리 보통 신맛이 납니다. 물과 섞었을 때 수소이온을 만드는 물질을 산(酸)이라고 합니다.
쓴맛은 해로운 물질의 맛입니다. 쓴맛은 다양하고 그냥 먹지 말라는 신호일 뿐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쓴 걸 먹기 싫어하지만 자라면서 점차 쓴 음식도 먹을 수 있게 되는 건 나이를 먹으면서 쓴맛 수용체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해롭지 않은 쓴맛도 있다는 걸 학습했기 때문입니다.
감칠맛은 아미노산 맛입니다. 몸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화학반응을 제어하는 것이 단백질인데 단백질을 구성하는 성분이 아미노산입니다. 생물이 생존하려면 단백질 맛이 좋게 느껴져야 합니다. 감칠맛은 20여 종의 아미노산 가운데 주로 글루탐산과 아스파트산을 감지합니다.
MSG(Mono Sodium Glutamate)는 글루탐산의 감칠맛과 나트륨의 짠맛을 동시에 지녔는데 인공조미료 MSG를 넣으면 음식이 맛깔나게 됩니다.
그런데 음식을 먹을 때 이 다섯 가지 맛만 느끼는 건 아닙니다. 세상에는 음식 종류 만큼이나 수많은 맛이 존재합니다. 심지어 같은 음식이라도 씹는 부위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맛을 제일 먼저 느끼는 것은 냄새입니다. 코에는 무려 400가지 종류의 후각세포가 있는데 인간은 아직도 후각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후각을 적절하게 묘사할 단어가 없는 이유입니다.
다음은 시각 정보에서 오는 맛입니다. 눈으로 보는 다양한 색깔과 빛깔이 내는 질감은 맛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과거 맛에 대한 기억과 잠재해 있던 감각을 소환하기도 합니다. 입에 군침이 돌게 하는 것도 시각 정보입니다. 그런데 《흑백요리사》에선 공정성을 확보하고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눈을 가리고 맛을 평가합니다. 내가 제일 이상하게 생각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맛은 생각보다 복잡한 ‘느낌’입니다. 인간의 모든 감각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야 맛이라는 신비한 느낌을 만들어냅니다. 또 그게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러니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흑백요리사의 경연 결과가 객관적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눈을 가리고, 점수를 매기고, 승자와 패자를 정한다 해도 그건 그냥 쇼일 뿐입니다. 각자의 입에 맛있으면 그게 맛있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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