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얘기 하나. 올해 시작하면서 교회 사람들과 한 해 동안 꼭 하고 싶은 일과 결심에 대해 나눈 적 있습니다. 나는 매일 감사한 일 세 가지를 찾아서 기록하겠다고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 앞에서 공표했습니다. 일상을 살면서 유심히 관찰하면 사소해도 감사하게 느끼는 순간을 하루에 세 개 정도는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연말에는 감사한 일이 1천 개가 넘게 모일 테니 그 중에서 ‘베스트 감사’를 골라 스스로 시상도 하겠다고 호기롭게 밝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의 감사 일기는 4월 어느 날까지 쓰다가 중단됐고 결심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매일 감사한 일 세 가지를 찾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억지로 채우려다 보니 작위적으로 적게 되는 것 같아 어느 순간 ‘의미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얻은 게 있다면 진정으로 감사함을 느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입니다.
얼마 전 《유퀴즈 온더블록》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연세대학교 김주환 교수 편을 봤습니다. 김 교수는 학부에서 정치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지만 미국에 유학해서 대화와 대인 간 소통에 관심을 갖게 됐고 지금은 뇌과학 분야와 함께 ‘마음근육’이라는 걸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뇌과학은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과 달리 과학적으로 밝혀진 내용을 토대로 이론을 만들고 실험하면서 연구와 치료에 활용한다고 합니다. 인간의 뇌에는 집중력 끈기 문제해결능력 등을 발휘하게 하는 ‘전전두피질’과 불안 공포 같은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편도체’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이 두 기관은 한 쪽이 올라가면 다른 한 쪽은 내려가는 시소처럼 서로 연결돼 있다는 걸 뇌과학자들이 밝혀냈습니다.
그래서 전전두피질은 활성화시키고 편도체는 안정화시킬수록 좋습니다. 실제로 이 이론을 이용해 김 교수는 지난 올림픽을 앞두고 ‘전전두피질 활성화, 편도체 안정화’를 주제로 국가대표 양궁선수들을 3개월 동안 훈련시켜 멘탈을 강화했다고 합니다. 이 교육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양궁대표팀의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 전 종목 금메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행복 전달 물질이라고 하는 도파민과는 기반이 다르다고 김 교수는 말합니다. 도파민 분출로 느끼는 행복감은 힘이나 에너지를 주지는 않습니다. 반면 전전두피질 기반의 행복감은 자부심 감사 존중 사랑으로 얻는 감정과 비슷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뇌과학자들은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선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이 최고’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또 스스로를 존중하는 사람은 남도 존중하고 남을 깎아내리는 사람은 내면에서 자신도 무시하게 되는데 이것도 뇌의 같은 영역에서 담당합니다.
그리고 행복과 실패는 다 인간관계와 연관이 있습니다. 타인을 사랑하고 존중하면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된다는 것도 밝혀냈습니다. 결국 감사 용서 연민 사랑 수용 존중 같은 감정이 남들은 물론 자신의 행복감을 높여준다는 것입니다. 올해 실패한 ‘감사일기 쓰기’는 내년에 다시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정말 다이내믹한 나라, 국민들 심심할까 봐 깜짝 이벤트를 열어주는 스윗한 복지국가에 사는 것도 감사한 일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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