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표현이지만 나이 마흔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월이 만들어낸 흔적과 쌓인 경험의 발자취는 누구도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많이 웃어서 주름이 보기 좋게 자리잡은 얼굴이 있는가 하면 화내고 찡그린 인상이 굳어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 얼굴에 책임진다는 말은 살아가는 것의 엄숙함과 진지함, 수고로움 같은 것들을 에둘러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시니컬한 말도 있습니다. 사람의 뒷모습은 거짓말을 못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자신의 진짜 뒷모습을 아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보지 못하고, 자신을 잊어버리고 결국에는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운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가 에두아르 부바가 인물의 뒷모습만 찍은 사진에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가 에세이를 써서 엮은 산문집 《뒷모습》을 가끔 펼쳐봅니다. 사진을 잘 몰라도 그냥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는 높은 예술성과 작가의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이 전해집니다. 사진도 좋지만 단어마다 빽빽한 의미를 담은 밀도 높은 에세이는 한치의 느슨함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뒷모습은 거짓말은 안 하지만 말은 많이 합니다. 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면 뒤는 앞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러니 뒤는 보지 않고 봐야 합니다. 돌아서지 않은 채 보아야 합니다. 햇빛을 구부릴 수 없으니 시선과 마음을 구부려 봅니다. 그럴 때 잠깐 보이는 게 뒷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요즘 매일매일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않은 자들의 궤변입니다. 역사는 과거를 반복하려는 퇴행세력과 미래를 새로 계획하려는 개혁세력이 충돌하는 전장입니다. 전투 양상은 매번 다르고 그 결과 또한 같지 않습니다.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을 구합니다.
모든 뒤는 앞에 있습니다. 자신의 뒷모습이 어떨지, 볼 수 없다면 부디 상상이라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에게 하는 경고입니다. 물론 씨알도 안 먹히겠지만. ^^*
sglee640@beyond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