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포스트》는 “노래를 부르고 응원봉을 든 모습이 정치집회라기보다 K-Pop 콘서트장 같은 느낌이었다”며 “탄핵집회 참가자들의 연령은 일반적인 정치시위보다 더 젊어졌다”고 보도했습니다. 어찌됐든 탄핵안은 가결됐고 여든 야든 정치적 셈법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시 또 복잡해졌습니다.
오늘 글은 첫번째 탄핵안이 불성립된 다음 날, 스물네 살 젊은 여성이 집회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했던 연설입니다. 상황 인식과 자기 주관, 그리고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향한 설득과 독려를 정연한 논리로 군더더기 없이 정리했습니다. 보면서 감탄하며 받아 적었습니다. 전문을 한번 보시죠. 워낙 상황이 급변하다 보니 불과 일주일 전 얘긴데도 아주 오래 전처럼 느껴지네요.
“어제 대통령 탄핵 때 국회를 빠져나온 김OO 의원 지역구인 도봉구에 사는 스물네 살 김XX입니다. 반갑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각자 살고 있는 지역구 의원들 이름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국회에서 우리 목소리를 대신하라고 국회의원으로 뽑아드렸습니다. 다신 도망치지 마십시오. 다신 회피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어제 많이 실망하셨죠?
악은 절차 없이 창을 깨고 밀려들어오고 야비하게 문을 빠져나가는데 어째서 선은 모든 순서를 지켜 막아서고 기다리며 차가운 시간을 한없이 견뎌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젠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행한 일 중 무엇이 위헌이라고 일일이 지적하기도 입이 아플 지경인데 우리는 끊임없이 이를 좇아가며 증명해야 합니다.
저마다의 일상을 멈추고 이곳으로 모인 우리, 한가해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닙니다. 여기 종일 있으면 춥습니다. 배고프고 화장실 한번 가기 어려우니 물 마시는 횟수를 줄이느라 목도 마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도 집회에 나오면 자꾸만 힘이 솟습니다. 저마다의 목소리로 같은 구호를 외치는 동료시민들을 보면 내일에 대한 희망을 느낍니다. 저에겐 다음 달에 성인이 되는 친동생이 있는데요, 그 애가 자유롭고 안전한 세상에서, 공정하고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해주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다들 저처럼 지켜내고픈 존재가 있으시지요?
그렇기에 저는 이곳에서 분노보다, 슬픔보다 커다란 사랑을 느낍니다. 더 오래 버티게 되고 더 크게 외치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나는 것이 어제로 끝날 줄 알았는데 조금 길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치지 맙시다. 우리 지치고 힘들 때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주며 끝까지 버팁시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이기심과 저열함으로 난도질한 이곳을 우리의 사랑으로 회복시킵시다. 끝까지 포기하지 맙시다.”
이 젊은이 또래 친구들은 지금까지 역사를 배우기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악하고 난폭한 한 정신이상자 덕분에 이제부터 역사를 살아가게 됐습니다. 왕정 독재의 과거로 돌아가려는 자들, 시대착오적 역사정신을 가진 자들과 맞서 싸우는 걸 경험하면서요. 선배시민으로서 부끄럽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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