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직장에선 예전에 볼 수 없던 낯선 광경이 펼쳐지곤 합니다. 부친이 하던 중소기업을 물려 받은 40대 사장은 최근 일 잘하는 30대 직원에게 ‘더 중요한 역할을 맡아 나를 도와주지 않겠냐’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칼퇴근하는 지금이 좋다. 주말까지 사장님 전화를 받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기업의 규모와 상관 없이 책임 있는 자리에 오르지 않으려는 ‘언보싱(Unbossing)’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 대기업에선 과장으로 승진하는 것조차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과장이 되면 노조에서 탈퇴해야 하는데 노조 신분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승진하지 않고 ‘만년 대리’가 더 낫다는 직원도 있습니다.
이럴 수 있는 이유는 과거에 비해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재테크 수단이 다양해졌고 직장에서의 성공보다 일과 가정의 균형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현재 선망하는 ‘안정된 정규직’이라는 직장에 대한 개념도 어떻게 바뀔지 모릅니다. ‘평생직장’은 역사 속에 사라졌고 라이선스를 들고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는 ’평생직업’도 이젠 불안합니다. 이미 10년 전부터 하버드대 드루 파우스트 총장은 앞으로는 한 사람이 평생 5~6개의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지난 주 《그만둘 수 없는 마음》을 쓴 김가지 작가의 북토크에 참가했습니다. 김 작가도 미술을 전공했지만 ‘청소일’로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을 확보하고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강연자 등 여러가지 일을 병행하는 ‘N잡러’입니다. 이런 형태의 일과 직업이 지금은 특별해 보일지 몰라도 앞으로는 보통사람의 일반적인 트렌드가 될 것이라는 예고편 같습니다.
육체노동은 로봇이, 지식노동은 AI가 하는 시대에선 인간이 비집고 들어갈 노동현장은 점점 제한적일 것입니다. 흔히 전문직이라고 하는 의사 변호사 회계사 같은 고소득 직업은 시장이 크고 돈이 되기 때문에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큽니다. ‘안전지대’로 여겼던 창의력이 필요한 직업도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림을 못그리는 사람이라도 명령어 몇 개로 원하는 이미지를 그려내고, 감정과 느낌을 담은 단어만 잘 고르면 아름다운 곡이 만들어집니다.
반면 돌봄요양사 같은 시장규모가 크지 않고 소득이 높지 않은 ‘근근이 먹고사는 직업’이 오히려 안정적일 수 있습니다. AI나 로봇이 굳이 들어오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교육도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새로 설계해야 합니다. 생애 초기 몇 년 동안 배운 것으로 평생 사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동안 학교가 가졌던 교육의 독점적 지위도 사라졌습니다.
어릴 때 ‘꿈이 뭐냐?’고 어른들이 묻는 건 사실은 무슨 직업을 갖고 싶냐는 뜻이었습니다. 앞으로는 하나의 직업만으론 살기 힘들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려면 한 가지 전문 영역도 중요하지만 모든 직업에 통용될 수 있는 기초학문과 소양이 더 중요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바탕이 돼야 각각의 직업을 거칠 때마다 자신만의 경험과 통찰이 컨텐츠를 풍부하게 하고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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