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반복해서 재생산되는 영화나 소설, 음악들이 있습니다. 클리셰처럼 고리타분할 것 같은데도 여전히 소비된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오 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구두쇠 스크루지’로 알려진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영화 《러브 액추얼리》 같은 게 대표적입니다. 심지어 서른이 다 된 아들은 어릴 때 봤던 영화 《나 홀로 집에》 시리즈를 지금도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몰아서 다시 보곤 합니다.
얼마 전 크리스마스 시즌에 기억될 만한 새로운 책을 한 권 찾았습니다. 아일랜드 출신 작가 클레어 키건이 쓴 길지 않은 소설인데 지난 해 번역돼 조용히 입소문을 타다가 최근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개봉한 《이처럼 사소한 것들》입니다. 한 줄로 평하면 용기에 관한 이야기이고 잔잔하지만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응원이 되어줍니다.
1985년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 석탄장사 빌 펄롱은 크리스마스를 앞 둔 어느 날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우연히 감춰진 비밀을 알게 됩니다. 수녀원이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여성들, 특히 미혼모에 가해지는 학대와 착취를 목격하게 된 것이죠.
빌은 세탁소의 불쌍한 여성들 앞에 놓인 비극 가운데로 뛰어들어 도움의 손길을 뻗어야 할지를 고민합니다. 보수적인 카톨릭 질서가 지배하는 마을인 데다 학교와 병원을 운영하며 마을의 모든 대소사에 관여하는 교회는 그 자체로 거대한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교회에 반기를 들었다가는 자칫 넉넉하진 않아도 다섯 딸을 키우며 사는 평화로운 일상이 깨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확고한 권위를 지닌 권력집단이 자행하는 불법과 부조리를 한낱 소시민이 밝혀내고 고발하기엔 너무 위험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도 수녀원에서 착취당하는 미혼모들의 현실을 알고 있지만 자신들 삶의 질서와 평화를 깨지 않기 위해 침묵과 방관을 선택합니다.
빌은 석탄으로 더러워진 손을 강박적으로 씻고 눈빛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립니다. 그는 자신의 평온한 삶이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묻습니다, 나의 평온이 당연한 것인가, 저들의 불행은 어떨 수 없는 것인가, 라고.
비겁한 안락과 불안한 용기 사이에서 주저하던 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 소설의 결말’답게 소녀의 손을 잡고 수녀원을 떠납니다. 우리는 때로 익숙하고 전통적인 권위에 쉽게 권력을 쥐여줍니다. 그리고 그게 옳다고 믿으며 순응하면서 무책임하게 따라갑니다. 이웃의 비극을 알면서도 평화롭게 성탄예배를 드리는 마을사람들처럼. “악이 승리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선한 자들의 침묵이다.” 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지금 사는 이 곳, 이 순간에도. ^^*
sglee640@beyond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