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 생기면 알 만한 사람에게 물어보고 배우는 게 익숙했습니다. 당연히 책을 찾아보고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게 정답에 가까울 가능성이 크지만 살면서 꼭 책에 있고 전문 분야에 속한 일만 생기는 게 아닙니다. 그럴 땐 나보다 세상을 먼저, 오래 산 어른들의 경험과 세월이 버무려 만들어진 지혜가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산술적으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은 나이가 됐습니다. 지혜를 구할 상대가 적어졌다는 뜻입니다. 젊을 땐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 세상을 보는 눈이 명확하고 판단도 정확해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특정 정치적 입장이나 어느 한쪽 진영에 속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안 별로 따져보고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 정의에 부합하면 누가 말하더라도 찬성했고 틀렸다고 생각하면 평소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정당이라도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문제를 접하고 경험할수록 어떤 현상을 바라볼 때 오히려 고민이 깊어지고 답을 내놓기 어려울 때가 많아집니다. 그래서 나보다 젊은친구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내 생각을 물으면 ‘글쎄…’라며 말끝을 흐리기 일쑤입니다. 겸손하거나 진중해서가 아닙니다. 정말 모르겠어서입니다.
왜 그런지 생각해 봤습니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생각의 중심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전에는 문제를 바라보고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옳고 그름’이 가장 앞에 있었습니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렸는지 시시비비를 가리고 잘못한 것을 비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명분이 옳은 결정을 지지했고 그런 결정에 반대하는 이들은 기득권 세력으로 치부해버렸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옳고 그름과 함께 ‘더 나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 일상을 살고 사람과 관계를 맺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는 단순히 도덕적 명제, 법이 정한 기준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너무 많습니다. 또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내 의견과 다른 목소리에도 귀를 열어야 합니다. 비판은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건설적인 발전을 위한 도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선의로 포장된 정책이나 그런 비슷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 후폭풍을 낳았는지를 보면서, 정책을 결정하고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시행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긴 변화이기도 합니다. 판단과 결정에 있어 옳고 그름을 넘어 더 나은 것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결국 옳고 그름만 따져선 우리 앞에 놓인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와 양극화된 정치, 사회문제, 지역 소멸, 인구문제 등 당위가 아닌 방법이 있어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더 나은 것이 무엇인지에도 생각의 무게를 두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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