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에서 은퇴한 야구 축구 농구 등 운동선수들이 방송에 나와 각자 자기 종목이 제일 힘들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예컨대 안정환이 큰 운동장에서 90분 동안 뛰는데 비해 농구는 손바닥 만한 코트에서 40분 뛰는 게 뭐가 힘드냐고 공격하면 서장훈은 축구는 운동장만 크지 11명이 뛰다가 걷고 쉬기도 하지만 5명이 1초도 쉬지 않고 40분 내내 계속 뛰어야 하는 농구가 더 힘들다고 맞받아치는 식입니다. 재미를 위해 티격태격하지만 각자 나름의 고충과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유치한 말싸움은 운동선수만 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5백만 부나 판 명실상부 스타 작가 유홍준 교수가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장이었을 때 얘기입니다. 참고로, 정부 조직에서 부(部)는 나라의 정책을 맡고 청(廳)은 현장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보면 대충 맞습니다.
하루는 청장 10여 명이 모여 식사하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저마다 자신들 업무의 고충과 남들이 모르는 어려움에 대해 하소연하는 중에 우리나라의 면적 얘기가 나왔습니다. 옛날에는 남한 면적이 9만4천㎢라고 배웠는데 현재는 간척사업으로 약 10만㎢로 늘어났다고 누가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통계청장이 나섰습니다. “동서, 즉 인천에서 강릉까지 200km, 남북으로는 판문점에서 부산까지 500km니까 200X500=10만㎢로 생각하면 쉽습니다. 평수로 환산하면 약 300억평입니다. 참고로 서울이 약 2억평, 제주도는 6억평 정도 됩니다.”
산림청장이 이어 말합니다. “우리나라 면적 300억평 중 2/3가 산이기 때문에 산림청은 200억평을 관리합니다.” 산림청은 이처럼 관할 영역이 넓어서 어렵고 힘들고 고달프다는 투정입니다. 실제로 산불이 많은 봄철이면 산림청장은 늘 비상대기 상태가 됩니다.
경찰청장이 발끈하며 받습니다. “경찰청은 300억평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업무의 대상입니다.” 이번엔 해양경찰청장이 가소롭다는 듯이 말합니다. “우리나라 바다는 영토의 약 4배 크기입니다. 그러니까 해양경찰청은 1,200억평을 관리합니다.”
모두들 한바탕 웃으며 관리 영역이 넓지 않아 보이는 문화재청장에게 물었습니다. “문화재청은 관리 면적이 얼마나 됩니까?” 말발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유홍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화재청이 직접 관리하는 5대 궁궐과 40개 조선왕릉이 있지만 전국에 산재해 있는 국보.보물 뿐 아니라 300억평 땅속에 있는 매장문화재와 1,200억평 바다에 빠져 있는 침몰선 200여 척의 수중문화재도 관리합니다. 거기다 천연기념물로 몽골에 가 있는 검독수리, 태국으로 날아간 노랑부리저어새도 잘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모인 청장들이 박장대소하면서 몰라봐서 미안하다며 문화재청의 관리영역이 가장 넓은 것으로 인정하자고 의견을 모으는 순간 그 때까지 조용히 듣고 있던 기상청장이 한 마디 합니다. “우리 기상청은 업무 면적이 평수로 계산이 안 돼요.”
운동선수든 나랏일 하는 사람이든 모두 자기 일을 사랑하고 일에 진심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얘기들입니다. 또 살다 보면 도처에 숨은 고수들이 있습니다. 함부로 경거망동할 일이 아니라는 거지요. 특히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열정적이고 순수하다면 나라가 이 꼴은 나지 않았을 텐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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