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5.01.15(수)
[신형범의 千글자]...도자기, 잘 몰랐는데
얼마 전 한 블로그 이웃이 클래식음악 제목이 마치 도자기와 비슷하다며 도자기 이름 붙이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도자기는 자기종류, 안료, 문양, 자기용도 순서로 이름을 붙입니다. 우선 백자인지 청자인지 구분합니다. 다음은 안료인데 철(철화) 코발트(청화) 구리(동화 또는 진사) 같은 식입니다. 그 다음에 용이나 모란, 매화 등 자기에 그린 문양을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병인지 항아리인지, 접시인지 필통인지 그 용도를 말하면 됩니다. 이건 우리 뿐 아니라 중국,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코발트로 구름과 용을 그린 백자 항아리라면 ‘백자 청화 운용(구름과 용) 항아리’를 순서대로 나열해 ‘백자청화운용문항아리’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백자철화포도문접시’라고 하면 철을 안료로 포도 문양을 새긴 백자접시를 뜻합니다. 배우고 보니 나처럼 문외한이라도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바로 이해가 됩니다.

인간이 만든 생활용기 중에서 백자를 뛰어넘는 것은 없다고 합니다. 14세기 중국에서 처음 고령토를 재료로 만든 경질백자는 이후 15세기 조선 분원백자와 베트남 안남백자, 17세기엔 일본의 아리타야기, 18세기 독일 드레스덴의 마이센자기로 이어지며 전 세계가 사용하는 생활용기입니다.

백자는 나라마다 고유한 미적 정서가 반영되는데 일본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중.일 3국 도자기를 비교해 설명한 게 재밌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은 완벽한 형태미를 강조하고 일본은 밝고 화려한 색채미가 돋보이는데 비해 한국은 선이 아름다워 부드러운 선맛이 일품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도자기 애호가들은 중국 도자기는 멀리 높은 선반에 올려 놓고 보고 싶어하고, 일본 도자기는 옆에 가까이 놓고 사용하고 싶어지는데 한국 도자기는 어루만지고 싶어진다는 것입니다. 세계 도자기사의 관점에서 특히 조선백자는 순백에 대한 사랑이 우러납니다. 중일 일본 유럽 등 다른 나라는 말이 백자지 청화 안료로 문양을 가득 배치해 화려하게 치장하거나 심지어 유상채와 금속기까지 결합한 데 비해 조선은 품위 있고 단아하며 넉넉한 여백의 미를 보여주는 고고한 백자의 자존심을 지켰다고 평가합니다.

조선백자 중에서도 18세기 전반 영조 때 금사리 가마에서 만든 달항아리는 조선의 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18세기 당시 높이 한 자 반(45cm)이 넘는 백자는 조선 말고 어느 나라에서도 만들어진 예가 없다고 합니다. 아직 기계식 동력이 발명되기 전이어서 수동식 물레로는 이처럼 둥근 원형의 항아리를 만드는 게 기술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달덩이 같은 항아리를 만들고 싶었던 조선 도공의 예술의지는 마침내 커다란 사발 두 개를 아래위로 붙여 달항아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때문에 달항아리는 둥그스름한 볼륨감이 있습니다. 완벽한 기교가 주는 꽉 짜인 차가운 맛이 아니라 부정형이 주는 여백의 미 같은 것 말입니다. 이걸 완벽하게 잘 만들겠다는 욕심조차 없던 도공의 무심한 경지라고 평가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권위적이지 않고 뽐내지도 않는 평범한 형식 속에 깊은 정감이 서려 있는 은은한 미감은 다른 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한국미의 전형으로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필적하는 미적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 보면 도자기는 사람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도자기를 보며 잘생겼다 멋지다 아름답다 우아하다 귀엽다 앙증맞다 호방하다 당당하다 수수하다 소박하다 등 보고 느낀 대로 말하곤 합니다. 그런 태도와 미적 향수를 통해 정서가 순화되고 치유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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