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문화권에서 ‘대통령’이라는 용어를 쓰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뿐입니다. 대만과 중국은 총통 혹은 링다오(領導)라고 부릅니다. President(프레지던트)가 대통령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프레지던트는 ‘앞(Pre)에 앉다(Sidere)’는 뜻으로 ‘사회자’ 또는 ‘의장’을 말합니다. 권위적 의미를 없애기 위해 미국은 건국 때부터 프레지던트로 불렀고 국가지도자, 기업회장, 학생회장이나 스포츠클럽 회장도 모두 프레지던트입니다.
1863년 일본에 도착한 페리 제독이 내민 친서의 ‘프레지던트’라는 말을 일본인들은 ‘군주’ 또는 ‘왕’으로 해석하려다 ‘사무라이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사용하던 ‘통령(統領)’에 ‘대(大)’를 붙여 ‘대통령’이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결국 대통령은 왜곡되고 과장된 조어입니다.
말은 일본이 만들었지만 ‘대통령’으로 불리는 리더가 군림하고 통치하는 나라는 한국입니다. 해방 후 1948년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습니다. 종신 독재를 꿈꾸던 이승만은 투표 과정에서 고무신과 막걸리를 주고 표를 사다가 결국 강제로 권력을 내려 놓아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바로잡기 위해 총칼 앞에 분연히 일어선 젊은 청년들의 피 끓는 열정과 상처를 알고 있습니다. 그 세대가 바로 지금 ‘국민 꼰대’로 자리잡은 70, 80대 어른들입니다.
박정희 유신체제 아래에선 이유도 모른 채 쥐도 새도 모르게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치도곤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12.12쿠데타의 주역 전두환은 5.18민주화운동을 하는 시민에게 총칼을 들이대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외부와 단절된 채 피와 목숨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낸 광주시민의 정신이 지금까지도 광장의 촛불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같은 꽤 괜찮은 정치가들도 있었습니다. 김대중은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지만 ‘전라도’라는 비아냥을 동시에 들어야 했습니다. 노무현은 퇴임 후 이명박정권과 그 비위를 맞춘 검사들의 농간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한 발짝씩 나아갔고 반도체와 자동차 IT에 이어 K팝과 K컬처가 세계로 퍼지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민주주의의 발전을 비웃기라도 하듯 듣도 보도 못한 대통령이 나타났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자가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지지자들을 부추기며 시민을, 나라를 갈라 놓고 극우 유튜버와 지지자들 바짓가랑이 뒤에 숨어서 법을 유린하다가 결국 체포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지지와 비난을 떠나서 창피하고 국가적으로 망신스러운 일입니다. 개인적 신념과 추구하는 가치는 다를 수는 있지만 민주시민으로서 최소한의 소양은 갖췄으면 합니다. 그리고 일본이 160여 년 전에 급조한 ‘대통령’이라는 말의 함정에 빠져 왕정과 민주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일은 이제 끝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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