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새 다 떨구고 앙상해진 저 나무를 보고
누가 헛살았다 말하는가
열매 다 빼앗기고 냉랭한 바람 앞에 서 있는 나무를 보고
누가 잘못 살았다 하는가
저 헐벗은 나무들이 산을 지키고 숲을 이루어내지 않았는가
하찮은 언덕도 산맥의 큰 줄기도
그들이 젊은 날 다 바쳐 지켜오지 않았는가
빈 가지에 새 없는 둥지 하나 매달고 있어도
끝났다 끝났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실패하였다고 쉽게 말하지 말라
이웃 산들이 하나씩 허물어지는 걸 보면서도
지킨 자리가 더 많다고 믿으며 물러서지 않고 버텨 온 청춘
아프고 눈물겹게 지켜낸 한 시대를 빼놓고.
도종환 시인의 《겨울나무》라는 시인데 읽으면 뭔가 요즘 세태와 겹쳐 보입니다. 아파트 단지 안 목련의 봉오리가 붓끝처럼 휘어진 채 가지 끝에 매달려 있습니다. 운동하러 가는 길에 손으로 슬쩍 만져 봅니다. 보기엔 붓끝 같은데 생각보다 딱딱합니다. 손 끝에 닿는 느낌은 나뭇가지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겨울을 견디느라 긴장해서 그렇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아파트 단지의 나무 뿐 아니라 산에 있는 다른 나무들도 비슷할 것입니다. 앙상한 가지만으로 겨울을 버티느라 그들의 몸은 텅 비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봄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렇다고 겨울이 끝난 건 아닙니다. 찬바람은 몇 번 더 몰려오고 길은 다시 꽁꽁 얼어 미끄러울 것입니다. 그런 걸 보면 빈 몸, 빈 가지로 침묵하고 서 있는 겨울숲의 풍경은 삭막합니다.
칼바람 속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날도 있다고 나무들은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겨울나무들은 끝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견디고 있을 뿐입니다. 꽃도 열매도 다 내려놓고 다만 침묵 속에 서 있는 겁니다. 그들이 피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거기 있었기 때문에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산맥의 큰 줄기를 지켜 온 사실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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