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다니는 딸에게 인터뷰 기사를 위한 녹취록 초고를 좀 다듬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인터뷰이는 환경과 동물을 테마로 한 잡지 발행인입니다. 인터뷰 현장에 있진 않아도 녹취록을 듣거나 전문을 읽다 보면 현장에선 발견하지 못한 것들이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서로 동문서답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질문은 그게 아닌데 대답은 엉뚱한 곳에 닿아 있고 상대의 말뜻을 잘못 해석해 질문과 대답이 엇갈릴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언어가 엇나가는데도 대화가 별 문제없이 이어지는 건 인터뷰라는 게 애초에 호의에 기반해 마련된 자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잘 듣고(인터뷰어) 잘 말하겠다(인터뷰이)는 암묵적인 합의로 이뤄진 인터뷰도 그럴진대 보통의 일상에선 얼마나 많은 동문서답이 오갈까요.
어쩌면 대화라는 게 반쯤은 오해를 품고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화로 풀자, 말로 하자, 그러지만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말에서 시작하지 않나요. 남남끼리 모인 세상에서 내 말이 조금의 오해도 없이 상대에게 가 닿기를 바라는 건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어쩌면 온전하게 대화로만 연결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같은 말도 처한 상황이나 대화하는 사람의 관계에 따라 의미가 다르게 읽힙니다. 농담으로 한 말이 하극상이 될 수도 있고 성희롱이 되는 경우도 봤습니다. 게다가 의도를 숨긴 말도 많습니다. “라면 먹고 갈래?”에 정말 라면만 먹고 나오면 바보 소리 들을 수도 있습니다. “너 몇 살이야?”는 ‘내가 너보다 위거든’이라는 고압적인 자세가 숨어 있습니다. 싸우고 화가 난 연인이 “다신 연락하지 마!”라는 말에는 ‘어서 화를 풀어 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대화는 언어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표정 눈빛 몸짓 감정 등 모든 것이 합쳐져 대화를 완성합니다. 실제로 대화가 품은 뉘앙스가 본래의 뜻보다 큰 힘을 지닐 때도 많습니다. 특히 소통이 어려운 상대는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 같은 ‘답정너’입니다. 이런 대화는 폭망하는 지름길입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유연한 자세를 지닌 사람, 말 속에 숨은 뜻을 읽을 줄 아는 사람, 언어가 지닌 한계를 함께 뛰어넘으려고 노력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생각보다 흔치 않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말을 잘하는 것보다 잘 듣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분야 전문가들은 대화의 황금비율을 70:30이라고 말합니다. 70을 듣고 30을 말하라는 겁니다. 그럴 때 상대는 내 편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경로를 이탈한 대화 속에서도 다시 길을 찾는 방법은 역시 정성을 다해 듣는 게 제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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