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솔직하고 논리적인 답변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보고 있자니 울화통이 터집니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현실에 대한 인식은 아예 없고 “그런 적 없다” “그건 아니다” “난 아니다”로 요약 가능한 거짓말과 모르쇠 그리고 남 탓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악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정신감정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휘하의 부하들을 위험으로 내몰고 약속은 손바닥 뒤집듯 하면서 뻔뻔스런 거짓말을 일삼으며 온갖 핑계로 법 집행을 피해다니는 이런 비겁하고 비열하고 비루한 종류의 인간을 표현하는 말을 내 실력으론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한때 빠져서 읽었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저항과 복종》에서 본 내용을 다시 소환해 봅니다. 본회퍼는 나치에 의해 처형당했는데 옥중 서간문인 이 책에는 그의 삶과 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특히 ‘우매함에 대하여’편은 마치 요즘 한국 상황을 보고 쓴 것처럼 통찰력이 돋보입니다.
“우매함은 선의 적으로서 사악함보다 훨씬 위험하다” “우매한 자는 악인과 달리 자기 자신에게 완전히 만족한다. 그뿐 아니라 감정이 상하면 쉽게 공격성을 띠기 때문에 위험하기까지 하다.” “우매함에는 백약이 무효다. 저항도 힘도 소용없고 기본 지식도 쓸모가 없다. 우매한 자는 제 선입견에 어긋나는 사실들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우매함을 극복할 수 있는 건 훈계가 아니라 해방이며 내적 해방이 가능하려면 외적 해방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고 그때까지는 우매한 사람을 설득하려는 일체의 시도를 단념해야 한다.”
본회퍼는 우매함은 지적 결함이 아니고 인간적 결함이라고 말합니다. 지적으로는 영리하지만 우매한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어려서부터 시험 보는 기계로 길러져 엘리트코스를 밟아 정부 고위 관료직에 오른 자들, 군 장성들의 뻔뻔한 거짓말과 가증스러운 얼굴이 떠오릅니다.
“한 사람의 권력은 다른 사람의 우매함이 있어야 한다”는 문장은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들의 살 길만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여당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의 모습과 완전히 겹칩니다. “우매한 사람은 온갖 악을 저지름과 동시에 그것이 악행임을 깨닫지도 못한다.”
때로는, 아니 생각보다 자주 현실은 상상(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을 뛰어넘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질 때 단 한 줄의 창작물도 써내지 못하는 나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느낍니다. 내가 일생 동안 배운 것 중 상당 부분은 말과 글을 다루는 일이었는데 어떤 말로도 이런 종류의 인간들을 묘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진짜 바보든지 치료가 필요한 중증 정신병 환자든지, 거기다 사악하기까지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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