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5.01.24(금)
[신형범의 千글자]...문학으로서의 일기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안 읽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노벨상 수상으로 한강 작가의 책은 엄청나게 팔렸습니다. 아이러니는 또 있습니다. 책 읽는 사람은 없는데 책을 쓰려는 사람,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엄청 많습니다. 좋게 보면 문학에 대한 잠재력은 있다는 얘기입니다.

남의 글은 안 읽으면서 본인은 글을 쓰고 싶어한다는 건 다시 말해 남을, 서로를 알려고 하지는 않아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많다는 겁니다. 결국 자기표현을 하고 싶다는 것이지요. 방법이 있습니다. 일기죠. 하고 싶은 얘기를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쓸 수 있는 게 바로 일기입니다.

원래 일기는 남이 보지 않는 비밀스런 글쓰기지만 글로 남긴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는 읽는다는 걸 염두에 두고 쓰는 것입니다. 특히 요즘은 자신의 일상을 스스럼없이 소셜미디어에 공개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일기는 비밀스런 내면을 담는 게 아닌 또 하나의 장르가 되었습니다.

읽는 사람도 ‘이게 뭐라고 읽지?’ 싶은데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매력이 있습니다. 시대와 성별, 나이가 다른 사람들의 하루하루도 나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만의 특별한 불행이 아니라 ‘사는 게 다 그렇지’ 하는 식의 위안을 느낄 때도 있고요. 한 때 유행했던 힐링, 감성에세이처럼 일기가 잔잔한 읽을 거리가 됐습니다.

나만 해도 사람들 앞에선 말할 수 없는, 그렇지만 여기서는 가능한 얘기를 이 공간(천 글자 일기)에 쓰기도 하고 진짜 내밀한 글을 쓸 때도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느꼈다, 또는 살기 위한 분투의 기록, 혼란한 마음 상태, 내적 욕망 등을 거르지 않고 과감히 드러내기도 합니다. 또 의지와 상관없이 겪은 고통스러운 사건을 나만의 언어로 복기하면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일기의 매력은 ‘장르 없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원초적인 ‘날것’이라는 점에서 글쓰기의 기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검열, 타인의 인정도 필요 없습니다. 문장이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단순한 하루의 기록이 아니라 장르가 규정되지 않은 무정형의 글, 타인의 일기와 나의 일기를 비교해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얻는 팁은 덤입니다.

다시 문학으로 돌아와서, 문학은 결국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작업입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글쓰기의 전제가 돼야 합니다. 그러려면 결국 다른 사람의 이야기(책)를 자주, 많이, 주의 깊게 들어야(읽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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