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5.01.31(금)
[신형범의 千글자]...잘살고 잘 죽는 것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계시다 보니 명절에 모이면 대화 중 상당 부분은 부모님 건강에 관한 얘기입니다. 아흔 가까운 나이에도 정신이 맑고 스스로 움직이시든 그렇지 못한 어른이시든 다 나름의 걱정거리를 안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대화하다가 불경스럽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생전장례식에 대해 조심스럽게 여쭤보았습니다.

평생 지킨 소신과 철학을 고집스레 지키는 완고함이 있으신 반면 전통이라도 불합리한 부분은 과감히 개선하시는 아버지는 의외로 긍정적이셨습니다. 죽고 나서 지인들이 조문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맑은 정신으로 보고 싶은 사람들 마지막으로 보고 인사를 나누는 것도 좋겠다며 쿨하게 인정하셨습니다.

《죽음 공부》의 작가이자 더블보드 의사 박광우 교수는 ‘웰빙 못지않게 웰다잉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죽음을 똑바로 볼수록 삶이 더 선명해지는데 우리는 죽음에 대한 공부가 너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대부분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없는 상태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다가 사망한다는 겁니다.

박 교수의 얘기를 좀 더 이어가 보겠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죽기 직전에 작별인사를 하는 경우는 1%도 안 됩니다. 인생의 끝에 죽음이 있는데 우리는 늘 삶에만 집중합니다. 자신은 절대 안 죽을 것처럼 삽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닥뜨리게 되면 허둥대며 시간을 보냅니다. 싸우고 한탄하고 두러워하면서. 어떤 이는 모든 걸 포기하고 검증된 치료가 아닌 대체의학 같은 것에 매달리는가 하면 온 힘을 다해 마지막 인사를 전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의사 입장에서는 조금 나아지게 하려고 많이 힘든 치료는 차라리 하지 않는 걸 권합니다. 치료할 때 질병으로 보는 의사가 있고 사람으로 보는 의사가 있습니다. 의사는 어디가 아프고 진단명은 무엇이며 어떤 치료를 받을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환자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환자의 자기결정권입니다. 극복하기 위한 방향키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가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병원에 끌려다니지 말고 환자와 보호자가 자주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생명은 하나 뿐입니다. 그 생명이라는 게 진짜 ‘숨만 붙어있는 것’인지 다시 건강해질 수 있는 생명인지 진중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건 사람마다 살아온 가치관, 보호자와의 관계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막연한 희망을 갖고 오늘을 희생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의식 없이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환자는 보통 1달이면 지칩니다.

잘 간병하는 게 아니라 잘 헤어질 것에 집중하는 것이 환자나 보호자를 위해 더 좋은 일입니다. 삶의 시작을 선택할 수 없듯이 죽음의 순간도 선택하기 어렵습니다. 작별인사를 할 수 있는 죽음이야말로 웰다잉입니다. 말할 때는 다들 이성적으로, 부모님들과 자식들 모두 상처를 덜 받고 양쪽 다 덜 고통스러운 방법을 찾자고 하지만 막상 ‘내 문제’가 되면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워집니다.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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