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수요 예측과 잘못된 설계로 복잡하기로 악명 높은 경전철 김포골드라인을 가끔 이용합니다. 서울에서 약속시간에 맞춰 일을 보려면 혼잡하더라도 그나마 전철이 제일 낫기 때문입니다. 서울역 근처로 가기 위해 먼저 골드라인을 탔습니다. 비교적 한산한 오전 시간인데도 빈 좌석은 없었고 그래도 편하게 서서 갈 정도는 됐습니다.
요즘 객차는 임산부를 위한 배려석이 별도로 마련돼 있습니다. 밝은 핑크색을 빛내며 비어 있을 때도 있지만 어쩐지 그 자리는 늘 임산부 아닌 사람이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날도 내 앞의 배려석에는 50대로 보이는, 임산부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여성이 앉아 있었고 내 옆에는 임산부 배지를 단 젊은 여성이 서 있었습니다.
앉은 여성은 임산부를 보자마자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임산부에게 자리를 좀 양보해 주십사고 앉아 있는 여성에게 부탁하고 싶었지만 괜한 오지랖으로 보일까 봐 우물쭈물하고 있었습니다. 임산부도 유세를 부리는 것처럼 보이거나 괜한 소란을 만드는 게 싫었던지 그냥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건너편에 앉은 40대로 보이는 여성이 벌떡 일어나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힘드시죠? 여기 앉으세요!”라면서 임산부를 잡아 끌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에도 배려석에 앉은 여성은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임산부는 민망해 하면서 40대 여성이 양보한 자리에 가 앉았습니다.
자기 자리를 양보한 그 40대 여성에게 눈길이 갔습니다. 왠지 통쾌한 기분과 함께 고맙고 예뻐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한 지하철에 사람들이 콩나물처럼 빼곡하게 서 있는 와중에도 핑크색 좌석은 비어 있는 걸 상상해 봅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임산부를 배려하겠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인 결과일 것입니다.
배려란 그런 것 아닐까요. 눈 앞의 작은 내 편안함을 앞세우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타인의 사정을 헤아리는 것. 그런 작지만 소중한 마음들이 모여 그나마 세상을 조금씩 나아지게 하는 것. 볼일을 마치고 저녁 때 돌아오는 길에 오전에 자리를 양보했던 그 40대 여성과 또 같은 객차에 타게 됐습니다. 왠지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인 것처럼 반가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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