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5.02.07(금)
[신형범의 千글자]...최악의 왕
고려 말~조선 건국 초까지 조선 3대 왕 태종 비(妃) 원경왕후의 관점에서 본 드라마 《원경》이 인기입니다. 세자로 책봉된 이복동생 이방석을 죽이고 친형과 동생까지 희생시키며 왕위에 오를 때까지 태종 이방원이 결정적인 순간마다 원경왕후 민씨와 처가의 도움을 받은 건 실록에 기록된 사실입니다.

왕위에 오른 후에는 공신인 원경왕후를 적대시하면서 처남 민무구, 무질, 무휼, 무회 4형제를 죽이거나 유배 보냈습니다. 또 며느리의 부친, 그러니까 사돈인 심온, 심정 형제를 죽이고 그 자손들까지 해쳤습니다. 그 며느리가 바로 세종대왕의 비 소헌왕후 심씨입니다.

물론 역사는 단편적으로 판단하고 해석할 순 없습니다. 건국 초기 어지러운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 아들 충녕(세종대왕)에게 흔들리지 않는 왕권을 물려주기 위해서라고 짐작되지만 태종의 왕좌는 형제들을 베고 가까운 사람들을 도륙하는 ‘피의 잔치’를 통해 빼앗고 지켰습니다.

얕은 지식이지만 조선 최악의 왕을 꼽으라면 나는 연산군과 선조 그리고 인조를 꼽겠습니다. 영화 《전.란》에서 보듯 선조는 나라나 백성보다 자신의 안위와 권력을 지키는 데만 몰두한 인간입니다. 왜군이 쳐들어오자 도성을 버리고 백성이야 죽든 말든 나루터를 불태웁니다. 왕권이 위협받을까 봐 의병장 김자령을 역모로 몰아 죽이고 민생은 도탄에 허덕이는데 궁의 재건에만 집착합니다. 어리석고 무능하고 사악하기까지 합니다.

무능하기로 치면 인조도 만만치 않습니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보여준 것처럼 무책임하고 결단력도 없고 무정책으로 일관하며 갈팡질팡하다가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고 결국 오랑캐라고 부르던 나라의 우두머리에게 머리를 찧고 아홉 번 절하는 굴욕을 겪었습니다. 게다가 왕위를 물려주지 않으려고 아들 소현세자를 독살했다는 얘기는 여러 자료에서 설득력 있게 전해집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조익, 이시백, 최명길, 장유 같은 충신들을 보면 ‘신하 복’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속 캐릭터와 당시 왕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생각하면서 현실 정치를 떠올립니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무지한 선대 왕들과 무지성, 무사유, 후안무치 권력자의 얼굴이 겹쳐 보입니다. 탄핵이든 개헌이든 이제 국민은 ‘국정피로’를 넘어 국정을 혐오하는 수준에까지 이른 것 같습니다. 지친 국민은 이제 더 이상 현 체제의 통치를 원하지 않습니다. 모든 게 권력자가 자초한 업보입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저작권자 © 비욘드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