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새해가 됐을 때 일부 언론은 “을사년(乙巳年) 뱀의 해가 밝았다”고 떠들어댔습니다. 틀렸습니다. 새해가 시작된 건 맞지만 을사년은 아닙니다. 띠(干支)가 바뀌는 기준은 1월1일도, 설(음력 1월1일)도 아니고 입춘(立春)이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양력 2월 4일이 입춘이지만 해에 따라 앞뒤로 하루씩 가감이 있습니다. 올해는 2월 3일이니까 을사년의 이번 주 에 시작된 것이 맞습니다.
을사년과 관련 있는 우리말 표현이 있습니다. ‘날씨나 분위기가 쓸쓸하고 스산할 때’ 쓰는 말 ‘을씨년스럽다’는 1905년 ‘을사년’과 관련이 있다는 게 정설입니다. 일본은 조선 침략을 위해 1905년 강제로 협약을 맺었고 조선은 주권을 잃게 됩니다.
일본이 조선을 강점한 1910(경술)년을 경술년에 일어난 나라의 치욕이라는 뜻으로 ‘경술국치(庚戌國恥)’라고 하지만 실제 강점은 1905년 을사년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흔히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 5명을 ‘을사오적’, 이 때 맺은 강제 협약을 ‘을사늑약’이라고 부르는 말도 여기서 비롯됐습니다.
나라에 안 좋은 일이 생겼고 이후 민심이 흉흉해진 상황을 사람들이 ‘을사년스럽다’고 했는데 이 말이 차츰 변해 ‘을씨년스럽다’로 굳어졌다는 겁니다. 학자들은 1908년 이해조의 신소설 《빈상설》에 이 표현이 처음 등장했다는 것을 그 근거로 듭니다. 그러니 ‘을씨년스럽다’는 민중의 관점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 큽니다. 자연재해든 위정자의 실정이든 그 치욕과 고통은 민중의 몫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120년이 지난 2025년 을사년, 정치적 혼란과 귀중한 생명을 잃은 큰 사고로 ‘을씨년스러운’ 세밑을 지나왔습니다. 법치를 무너뜨린 권력자, 간신처럼 사리사욕만 챙기는 무리배들 그리고 공항에선 가족을 잃은 절규가 하늘과 땅을 울리는 사건 사고 같은 것들이 ‘을씨년스러운’ 주역입니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실러는 “사람은 행운의 시기엔 위대해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 성장하는 건 불운의 시기”라고 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을씨년스럽지만 성찰과 성장, 전환의 시기로 삼아 올해 을사년은 ‘을사년답다’라는 긍정적인 말이 ‘을씨년스럽다’를 밀어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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