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는 천재 외과전문의가 주인공인 만화 같은 얘기입니다. 실제 의사인 이낙준의 웹소설과 작가 홍비치라의 웹툰 《중증외상센터 : 골든아워》를 기반으로 한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판타지 의학 드라마입니다. 이렇게까지 말도 안 되는 얘기여서 오히려 속시원하고 재미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11년 소말리아 해적이 나포한 한국 상선을 구출한 ‘아덴만 작전’은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한국 중증외상의료시스템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총상을 입은 선장을 수술한 당시 아주대병원 이국종(현 국군대전병원장) 교수가 그 중심에 있고 소설과 웹툰, 드라마의 모티프가 됐습니다.
중증외상 수술과 치료는 병원 입장에선 돈이 되지 않습니다. 수술과 환자가 많을수록 적자가 늘어나는 구조이기 때문에 환자가 오는 걸 반기지 않고 인력과 자본을 투자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니 응급 외상환자를 외면하는 의사 개인이나 병원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습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다치는 사람, 즉 응급외상환자는 거친 현장에서 일하는 육체노동자가 대부분입니다. 사고에 노출될 확률도 사회적 약자, ‘없는사람’일수록 높습니다. 예로, 같은 교통사고라도 에어백이 열몇 개씩 터지는 고급승용차를 타는 사람과 경차를 타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위험의 강도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자가 누구냐에 따라 사회적 대응방식은 달라집니다. 만약 중증외상환자 대부분이 사회 기득권층이라면 정부나 언론, 힘 깨나 쓰는 자들이 지금처럼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덴만 사건 이후 이국종법(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응급외상 분야가 새로운 전기를 맞았지만 어쩐 일인지 그 이후 지지부진합니다. 이유는 앞에 설명한 대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약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소설, 웹툰, 드라마에서 다뤄지니까 지금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라도 하는 겁니다. 필요할 땐 영웅 취급(이국종)하면서 정치권에서도 얼굴마담으로 영입하려고 경쟁적으로 매달렸다가 사람들 관심이 멀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나 몰라라하는 것도 정치인들입니다.
그렇다고 그런 자들을 마냥 비난할 수도 없습니다. 보통은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봉사와 희생정신, 사명감으로 무장한 예비 의사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명감을 실현시켜 줄 시스템이 빈약하고 ‘의사도 인간’이라는 점을 들면 100%는 아니지만 약간은 수긍하게 됩니다.
드라마 속 한유림이라는 항문외과 과장을 보면 나 같은 보통사람의 속성이 함축돼 있습니다. 속물이며 이기적이고 성공지향적이지만 그렇다고 나쁜 사람도 아닙니다. 이런 자들의 특징은 주위에 훌륭한 사람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빚진 기분이 들고, 어떤 계기가 생기면 그게 설령 등떠밀려 하는 것이라도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회의 시스템이 언제까지나 영웅 한 사람에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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